“옻칠은 한 번 해놓으면 1만 년 이상 유지되는 유일한 재료로 한때 우리나라에서 널리 활용된 미술 기법입니다. 이 소중한 재료의 가치를 우리나라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올해로 만 일흔 살이 된 거장의 목소리에는 답답함이 묻어났다. 세계적인 칠예가 전용복 작가는 “고구려 벽화와 팔만대장경 등 오랜 역사를 담고 있는 우리의 문화유산은 모두 옻칠 마감이 돼 있다”면서 “요즘 젊은 세대들은 모르는 나전옻칠공예는 사실 우리나라가 원조”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옻칠’의 영어 표기는 ‘japan’이다. 앞 글자를 대문자로 바꾸면 ‘일본’이라는 고유명사가 될 정도로 세계는 일본을 옻칠의 나라로 인정한다. 하지만 옻칠은 사실 이미 조선시대에 우리나라에서 정점을 찍은 공예 기술이다. 특히 소라·전복 껍질 등을 얇게 오려 나무 위에 붙이고 옻을 칠하는 나전 기법은 우리에게 ‘자개’라는 명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전 작가는 목재 회사에서 일하던 젊은 시절 우연히 옻칠의 매력에 빠졌다. 식탁 등 가구에 장식을 하며 칠예가로 살던 그는 어느 날 밥상 1000개에 옻칠을 해달라는 주문을 받는다. 일본 도쿄 ‘메구로가조엔’ 식당에서 사용되는 밥상이었다. 메구로가조엔은 8000여 평 규모를 자랑하는 일본 최초의 호화 연회장이다. 1930년대에 지어진 이곳의 벽 장식은 대부분 거대한 나전옻칠공예로 꾸며져 있는데 대부분 작품에 주름질·꺾음질 등 조선의 전통 기법이 적용됐다.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의 옻칠 장인들의 솜씨다.
메구로가조엔을 접하고 작가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일본 정부와 메구로가조엔이 옻칠 작품 복원 사업을 진행할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 이 사업에 생을 걸었기 때문이다. 대학 일본어 학과에 입학해 일본어를 배우고 일본 전국 각지의 옻칠 장인을 만나 술과 밥을 사며 기법을 귀동냥했다. 철저한 전략과 준비 끝에 1991년 전 메구로가조엔 사업을 따냈다. 10톤 정도의 옻을 사용하는 복원 사업과 건설 전체에 들어간 비용은 약 1조 2000억 원. 연 필요 인원 10만 명, 최소 비용 1조 원으로 추산된 사업을 전 작가는 300여 명의 제자들과 함께 단 3년 만에 해냈다. 전체 작품 중 3분의 1은 복원작, 나머지 3분의 2는 작가의 창작물이다. 전 작가는 “일제강점기에는 이 작품을 만든 이들이 조선인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지만 그때는 메구로가조엔에 목숨을 걸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그는 일본의 전설이 됐다. 일본의 시계 브랜드 세이코와 협업한 시계는 8억 원에 팔려나갔고 일본에서만 수천여 명의 제자가 생겼다. 배우 김혜수·배용준도 그의 제자들이다. 그렇게 ‘조선의 옻칠’을 세계에 알리겠다는 그의 결의는 현실이 된다.
이미 세계적인 칠예가가 됐지만 열정은 끝나지 않았다. 그는 요즘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전 작가는 “선조들이 남긴 기법을 잘 정리해 21세기에 맞는 형태로 꾸준히 변화시키는 게 진정한 전통”이라며 “옻칠 작품을 ‘순수예술’의 영역에서 성공시키는 것이 첫 번째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옻이라는 특수한 소재를 살려 철학과 가치관을 담은 파인 아트 작업을 해나간 후 작품에 실용성을 더할 것”이라며 “현대의 감성에 맞게 전통을 전파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최근에는 전시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9월 6일에는 경기도 용인 ‘갤러리위’에서 개인전을 개최한다. 이곳에서는 메구로가조엔에서만 볼 수 있는 ‘엘레베이터 장식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그는 “전통적인 옻칠을 우리 생활공간에 접목해 옻칠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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