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몰 예정인 비과세·감면 제도의 ‘묻지 마 연장’이 되풀이되고 있다. 정부는 최근 발표한 ‘2023년 세법 개정안’에서 올해 종료되는 비과세·감면(조세 지출) 제도 71개 중 65개(91.5%)의 일몰을 미루기로 했다. 기한만 연장하는 것이 58개, 구조를 재설계해 기한을 늘린 제도가 7개다. 이 가운데 47개는 대체되거나 폐지될 가능성이 있는 ‘적극적 관리 대상’이었다. 예정대로 끝나는 조세 지출은 6개에 불과했다. 세금을 면제하거나 깎아주는 비과세·감면은 취약 계층 지원이나 국가 전략산업 육성 등에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정부도 이번 조세 지출 연장의 취지를 “서민층·농어민·중소기업 등의 세 부담 경감”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충분한 검토를 거치지 않고 선심성 일몰 연장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역대 정권마다 비과세·감면 정비를 통해 세수를 확대하겠다고 다짐했지만 별 성과가 없었다. 외려 선거 등을 의식해 다수의 조세 지출을 연장했다. 이러다 보니 종료 비율은 2019년 20.6%, 2021년 10.5%, 올해 8.5% 등으로 계속 떨어지고 있다.
비과세·감면 기한 연장이 되풀이되면 수혜층에 당연한 혜택으로 인식되면서 제도 정비 자체가 어려워진다. 특히 세수 감소로 재정에 부담을 준다. 이번에 세제 혜택이 연장된 65건의 감면액 규모는 13조 6000억 원에 이른다. 음식업자가 농산물을 구입할 때 일정 한도까지를 매입 세액으로 간주해 부가가치세 과세를 공제해주는 ‘면세 농수산물 의제매입 세액공제’의 감면액은 3조 868억 원으로 가장 컸다. ‘신용카드 사용액 세액공제(2조 6566억 원)’ ‘자경농지 양도소득세 감면(2조 3686억 원)’ 등이 그 뒤를 이었다.
그러잖아도 올해 들어 5월까지 국세 수입이 1년 전보다 36조 4000억 원이나 줄었다. 연말까지 지난해와 같은 수준의 세금이 걷힌다 해도 올해 세수는 당초 정부가 세웠던 세입 예산(400조 5000억 원) 대비 40조 원 이상의 펑크가 날 수 있다. 저출산·고령화로 복지 수요도 급속히 늘고 있어 재정 악화가 우려된다.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해 효과가 불분명하거나 작은 비과세·감면 제도의 수술을 서둘러야 할 때다. 일몰을 앞둔 조세 지출 제도 가운데 무엇을 종료하고 연장해야 할지 심층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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