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첨단 반도체 통제에 맞서 중국이 레거시(구형) 반도체 생산을 대폭 늘리면서 서방 진영이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이 막대한 보조금을 발판 삼아 저렴한 반도체를 쏟아낼 경우 다른 국가에서 제조되는 반도체의 시장 경쟁력이 상실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레거시 반도체 시장에서 중국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질 경우 지난해와 같은 ‘반도체 공급망 쇼크’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7월 31일(현지 시간) 블룸버그통신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이 레거시 반도체 생산을 크게 늘리면서 우려가 커진 미국·유럽 당국자들이 이를 막기 위한 전략을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반도체 장비 수출을 통제해 중국의 14㎚(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반도체 제조를 틀어 막았던 미국이 새로운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레거시 반도체는 통상 10년 전에 도입된 기술인 28㎚ 이상 반도체를 말한다.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가전제품과 자동차는 물론 미사일·레이더 같은 국방 장비에 두루 쓰인다. 지난해 미국 자동차 시장을 덮친 반도체 공급망 쇼크 역시 레거시 반도체 부족 때문이었다.
중국은 미국의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 이후 레거시 반도체 생산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특히 중국을 대표하는 반도체 기업 SMIC는 중국 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공장 4곳을 새로 지으며 이 시장에서 지배력을 높이려 하고 있다. 컨설팅 회사 이스트웨스트퓨처스의 존 리 디렉터는 “필수적인 반도체를 공급하는 데 있어 중국의 역할이 작아지기보다는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미국과 유럽 당국자들은 태양광 산업처럼 중국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 레거시 반도체를 대규모로 공급해 외국 업체들을 몰아낼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은 최근 이와 관련해 “중국이 레거시 반도체를 생산하기 위해 쏟아붓는 보조금은 미국과 동맹국이 공동 대응해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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