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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현대의 신전, 야만의 무대 되다

대지진에 유일하게 버틴 아파트

생존자 몰려들며 주민들과 충돌

신분·환경 변화 따라 계급 나뉘고

'순살아파트' 등 韓 현실 오버랩

재난 속 인간 본성에 질문 던져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한 장면. 사진 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대한민국에서 아파트가 갖는 의미는 단순히 주거 공간만이 아니다. 아파트는 어찌 보면 부의 척도이자, 사회경제적 계급을 나누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아파트의 입지나 브랜드, 평수에 따라서 그 ‘급’은 갈린다. 아파트는 그 자체를 넘어서 인생의 목적이나 종착점, 꿈 그 자체가 되는 경우도 있다. 또 아파트는 각종 부정부패와 카르텔, 사기의 온상이기도 하다. 결국 한국에서 아파트는 이 사회의 축소판 그 자체인 것이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한 장면. 사진 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한국 사회의 각종 모순과 부조리를 황궁 아파트 103동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통해 완성도 높고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대지진으로 완전히 파괴된 서울, 유일하게 버티고 있는 아파트로 생존자들이 몰려든다. 모이는 외부인들에 내부 주민들은 결집해 외부인들을 몰아내고 자신들만의 규칙을 만든다. 영화는 대재앙 속 유토피아가 된 것만 같은 이 곳에서 생기기 시작하는 균열에서 본격적 이야기를 시작한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한 장면. 사진 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아이러니로 가득 차 있는 영화를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한국의 현 상황이 오버랩된다. 최근 들어 유난히 늘고 있는 부실공사와 ‘순살 아파트’ 사태와 부동산 전세 사기 사태가 떠오른다. 지난달 31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엄태화 감독은 “작품을 위해 한국의 역사·문화·사회를 공부했더니 지금의 현실이 반영된 것 같다”며 “7080 버블 시기 속 아파트는 부정적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영화는 이뿐만 아니라 아파트 단지 간 차별, 사회경제적 계급 간의 갈등도 다룬다. 이병헌 등 배우들의 호연과 함께 영화는 블랙코미디처럼 느껴져 씁쓸한 생각과 조소를 자아낸다. 쓸쓸히 흐르는 윤수일의 ‘아파트’는 감정을 더욱 배가시킨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한 장면. 사진 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의 주제의식은 더 나아가 ‘악의 평범성’을 다룬다. 엄 감독은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을 다루는 영화”라며 “질문을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엄 감독이 말했듯 영화의 전체적 톤은 파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닮아 있다. 평범한 사람들이 거리낌 없이, 의식 없이 악행을 자행하기 시작하고 변해가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평범성이 선악 양면을 모두 내포하고 있다는 무서운 사실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다. 이병헌은 1일 인터뷰에서 “신분과 환경에 따라 변화폭이 큰 사람들이 있다”며 “영탁은 을 중 을, 소시민이라 어쩌면 환경 변화에 매끄럽지 못해 더 거친 독재자가 됐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작품은 재난 속 인간의 이기심과 이타심에 대한 근원적 질문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 인간 스스로가 인간의 종언을 가속화한다는 사실은 더없이 역설적이다. 인간 이성과 문명의 상징, 현대의 신전 그 자체였던 아파트는 비이성과 야만, 복마전의 전형으로 추락해 버린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한 장면. 사진 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인간과 사회의 본성에 대해서 많은 학설들이 있어 왔지만, 영화를 보면 토마스 홉스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에서 비롯된 사회계약론이 결국엔 옳았던 것인가 하는 의문에 빠지게 된다. 이는 우리의 사회 시스템과 정치 체제에 대한 의심으로도 이어진다. 그러나 감독은 그 속에서도 인간성에 대한 일말의 희망의 끈을 완전히 놓지는 않는다.

이 영화는 재난 블록버스터나 스펙타클한 장면으로 가득 차 있는 쾌감 넘치는 영화는 분명 아니다. 이병헌은 “스릴러가 강한 휴먼 블랙코미디”라고 작품을 표현했다. 엄청난 컴퓨터그래픽(CG) 등 볼거리를 기대하고 본다면 괴리감을 느낄 수도 있다. 9일 개봉. 130분.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주연 김영탁 역의 배우 이병헌. 사진 제공=BH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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