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아이의 어머니였던 미국의 흑인 여성 헨리에타 랙스(사진)는 1951년 자궁경부암으로 31세에 사망했다. 병원 의료진은 그에게 알리거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암세포를 채취해 연구실로 보냈다. 랙스의 세포는 다른 세포와 달리 실험실에서 무한히 증식했고 죽지 않는 ‘불멸의 세포’라 불리며 전 세계 연구실로 퍼져나갔다.
의학 연구에 이바지한다는 명목으로 전 세계 실험실을 떠돌던 ‘불멸의 세포’가 72년 만에 법적 권리를 되찾게 됐다. 1일(현지 시간)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세포의 주인공인 랙스의 유족들은 고인의 사망 전 채취한 암세포를 배양해 전 세계 실험실에 판매했던 미국 바이오 기업 서모피셔사이언티픽과 소송을 합의로 종결하기로 했다. 구체적인 보상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유족 측 변호인인 벤 크럼프의 이날 기자회견에 따르면 양측 모두 만족한 합의였다. 손자인 앨프리드 랙스 카터 주니어는 “70년이 넘는 긴 싸움이었지만 랙스는 마침내 승리했다”고 말했다.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 거주하던 랙스는 복부 통증과 이상 출혈로 1951년 존스홉킨스병원에서 사망했다. 의료진은 랙스의 자궁경부에서 발견한 암세포를 연구실로 보냈는데 그의 몸에서 채취한 세포는 실험실에서 금방 죽어버리는 다른 세포와 달리 계속 살아남아 증식했다. 과학자들은 이 불멸의 인간 세포에 ‘헬라(HeLa)’라는 이름을 붙이고 다양한 실험 연구에 활용했다. 헬라 세포는 소아마비 백신부터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치료제, 항암제와 불임 연구 등에 수없이 이용됐지만 유족들은 오랜 기간 사실을 몰랐고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
헬라 세포에 관한 이야기는 2010년 출간된 리베카 스클루트의 베스트셀러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고 유명 방송인인 오프라 윈프리를 주연으로 드라마로도 제작됐다. 유족들은 2021년 서모피셔사이언티픽이 헬라 세포 판매로 수조 원의 부당 이익을 챙겼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서모피셔 측은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주장을 제기해왔지만 유족 측은 “랙스의 유전물질을 재생산하거나 그로부터 이익을 얻을 때마다 소멸시효가 연장된다”고 반박해왔다.
크럼프 변호사는 “미국의 의학 실험 역사는 의학적 인종차별의 역사이기도 하다”며 “헬라 세포의 비윤리적이고 불법적인 역사를 통해 이익을 얻었던 사람들과의 싸움은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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