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초등 교사 사망 사건을 계기로 학부모의 ‘악성 민원’을 근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서울시교육청이 교사 면담 사전예약제 도입, 민원대기실 마련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민원 창구를 일원화해 학부모의 요구에 대한 교사들의 부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교사들 사이에서는 실효성이 크지 않을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예약제 등으로 시간만 조금 늦춰질 뿐 교사가 학부모 민원을 100% 부담해야 하는 구조는 그대로인 탓이다. 교사들 사이에서는 학부모 ‘갑질’이 ‘예약제’로 바뀌었을 뿐 변한 건 없다는 조롱 섞인 비판마저 나온다.
2일 서울시교육청이 발표한 ‘교육활동 보호 강화 방안’에 따르면 교육청은 학부모 민원 부담을 줄이기 위해 올 2학기부터 희망하는 유초중고를 대상으로 ‘교사 면담 사전예약 시스템’을 시범 도입한다. 학부모가 교사 면담 또는 전화 통화를 요구하는 경우 학부모에게 사전 고지 의무를 부여하고 학교는 사전에 고지받을 권리를 제도화한다는 것이다. 예약은 교육청이 개발한 앱을 통해 이뤄지며 민원은 시스템상에서 1차적으로 걸러진다. 또한 학교 출입 관리 강화를 위해 학교별로 CCTV가 달린 ‘민원인 대기실’도 시범 운영한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이 시스템이 악성 민원 자체를 완전히 없애지는 않겠지만 감정이 북받치거나 욱해서 공격적으로 행동하는 것에 대해 일종의 쿨링 다운을 할 수 있는 숙려 시간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발표된 방안에는 △교원지위법 △아동학대처벌법 △초중등교육법 등 교권 침해 관련 법령 개정 촉구와 함께 아동학대 등 법적 분쟁 시 수사 단계부터 교육청에서 변호인 선임비를 선지원하는 등 대책도 담겼다. 하지만 교사들의 관심은 무엇보다도 학부모 민원을 어떻게 다룰 것이냐에 쏠렸다. 교권 침해 논란을 촉발시킨 서초구 초등 교사의 죽음이 학부모의 악성 민원 때문이라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는 데다 이미 교권 침해가 발생한 뒤 ‘사후 지원’을 하는 것보다 근본적으로 악성 민원을 ‘사전 차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의견이 많았기 때문이다.
교사들 사이에서는 해당 방안이 기존보다는 민원 절차를 조금이나마 강화하는 효과는 있겠으나 실효성은 떨어질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예약을 한다고 해도 결국에는 교사와 직접 상담은 이뤄지기 때문에 사전예약 단계에서는 평범한 민원을 제기했다가 막상 직접 대면한 이후에는 갑질이나 폭언을 할 경우 사전예약의 의미 자체가 무력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사전예약 단계에서의 1차 민원 분류를 누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논의할 계획이라고만 답했다.
서울지역의 한 초등 교사는 “사전예약 때문에 갑질을 안 할 학부모는 원래도 진상 학부모가 아닐 것”이라며 “사전예약제를 한다고 해 민원인이 학교에 들어오지 못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교사는 “학부모 민원을 직접 받지 않게 해달라고 요구한 것인데 이번 대책은 민원을 공식적으로 받으라고 한 셈”이라며 “교사들 사이에서는 ‘갑질예약제’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동석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교권본부장은 “일정 부분 효과는 기대되지만 악성 민원을 거르는 데 실효성이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라며 “서울 관내 학교에 대한 민원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학교급에 맞는 맞춤형 대책에 대한 모델을 내놓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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