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공공아파트 지하 주차장의 ‘철근 누락’ 사태와 관련해 민간 단지로 조사를 확대하기로 하면서 민간 아파트 예비 입주자와 입주민들의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다. 공사 중인 단지의 경우 지방자치단체가 점검에 나서거나 조합 등 소유자가 ‘특별 점검’을 요청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한창 막바지 공사가 진행 중인 서울 강남구 개포동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개포1단지 재건축)’ 조합은 주거동에 무량판(복합 구조)이 일부 쓰인 것을 확인하고 특별 점검 요청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1월 입주를 앞둔 만큼 주민들의 불안을 낮추기 위해서다. 총 6702가구로 조성되는 개포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는 현대건설과 HDC현대산업개발이 시공을 담당하고 있다. 지난해 1월 HDC현대산업개발이 공사를 맡은 구역에 대한 특별 점검을 실시해 ‘양호’ 결과를 받은 바 있는데 이번 무량판 구조의 안전성 문제가 대두되자 특별 점검을 한 번 더 요청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재건축 단지인 노원구 상계동 상계주공5단지도 주거동에 무량판 구조가 적용됐다는 것을 확인하고 사업시행자인 신탁사에 무량판 구조의 안전성에 대해 문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민들의 불안이 커지자 지자체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공사 중인 단지 가운데 지하 주차장에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곳을 위주로 집중 점검하고 있다. 서초구청에 따르면 서초구에서 공사 중인 단지 가운데 지하 주차장 설계에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곳은 반포동 래미안원펜타스(신반포15차 재건축), 잠원동 신반포18차 337동, 방배동 래미안원페를라(방배6구역 재건축) 등 3곳이다. 이 가운데 래미안원펜타스는 최근 서울시가 운영하는 품질점검단으로부터 점검을 받았다. 나머지 두 곳은 아직 골조 공사가 진행되지 않아 추후 점검할 계획이다. 동작구청에서도 상도동 상도푸르지오클라베뉴(상도11구역 재개발)의 지하 주차장 일부에 무량판 구조가 적용돼 최근 안전 점검을 마쳤다. 점검 결과 무량판 구조 자체의 안전성 문제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가 조사 중인 민간 아파트 가운데 지하 주차장뿐 아니라 주거동에도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불안은 확산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지어진 재건축 단지와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 대부분에서 주거동에 무량판 구조가 쓰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100년까지 쓸 수 있는 ‘장수명주택’ 건설을 위해 무량판 구조를 적용한 아파트에 대해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 시 용적률 인센티브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성동구·강남구·강동구·서초구 등 한강변 고급 신축 아파트와 고층 주상복합의 주거동에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층고가 높고 리모델링이 용이하다는 장점 때문이다. 일부 단지들에서는 입주민들이 자체적으로 건축물 대장·도면 등을 확인하거나 건설사 AS 창구를 통해 무량판 구조 적용 여부에 대해 문의하는 등 행동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건설 업계는 정부의 전면 조사 방침으로 인해 ‘무량판 구조’ 자체가 불필요한 공포감을 조성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한 대형 건설 관계자는 “지하 주차장이든 주거동이든 무량판 구조가 적용됐어도 제대로 시공했다면 안전 문제가 없는데 마치 해당 구조가 적용된 모든 곳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으로 비쳐질까 우려된다”고 씁쓸해 했다.
특히 건설 업계는 주거동의 경우 지하 주차장에 적용된 무량판 구조와는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지하 주차장의 경우 전면 무량판 구조로 8~10m 간격으로 떨어진 기둥들이 온전히 상판(슬래브)의 하중을 지탱하지만 주거동은 벽식·기둥식이 혼합된 구조가 많아 상판의 하중이 분산된다는 것이다. 또 엘리베이터·계단이 있는 코어 부분도 건물 전체의 하중을 분산시킨다. 또 흙과 차량 무게를 견뎌야 하는 주차장과 달리 주거동은 상대적으로 하중이 크지 않은 것도 두 무량판 구조의 차이점이다. 고창우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회장은 “시공 능력 편차에 따라 결과는 다르겠지만 지하 주차장과 달리 주거동에서는 주차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급성 파괴력이 있는 상황이 일어나기 힘들기 때문에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안전성 문제가 대두되자 정부와 지자체는 긴급 안전 점검에 나서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달 10일부터 이달 9일까지 무량판이 쓰인 공사 현장 28개소에 대해 긴급 점검을 실시하고 있다. 대상은 공동주택 12개소(민간아파트 10개소, 서울도시주택공사 2개소)와 일반 건축물 16개소다. 이외에도 지난달 30일 ‘무량판 구조 적용 아파트 현황 조사 안내’ 공문을 25개 자치구로 보내 2013년부터 무량판 구조로 준공됐거나 공사가 진행 중인 공동주택 70개소를 파악하고 SH와 전수조사를 준비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처음에는 2017년 준공 단지까지 조사를 진행했으나 무량판 구조가 본격화된 2013년으로 대상을 확대하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했다”며 “국토부와 조사 대상·방법 등에 대해 논의해나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다만 입주가 이미 끝난 단지의 경우 공사 중인 단지보다 점검 절차가 복잡할 것으로 추정된다. 소유권이 입주자로 완전히 넘어간 만큼 각 단지의 입주자협의회에서 점검에 동의해야 점검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전에는 서울시 품질점검단이 골조 공사가 끝난 후 1차, 사전 점검 때 2차로 안전 점검이 가능하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