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경기 침체 속에서도 양호한 수주 실적을 거둔 건설사들이 올해 정부의 시공능력평가에서 전년 대비 부진한 성적표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시공능력평가는 건설사의 공사 수주 실적보다 재무 안전성에 더 높은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지자 정부는 이달 중 제도 개선안을 마련하고 내년부터 새로운 평가 기준을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4일 건설 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최근 건설 업체를 대상으로 평가한 2023년도 시공능력평가 결과를 공개했다. 시공능력평가는 발주자가 적정한 건설 업체를 선정할 수 있도록 건설 공사 실적, 경영 상태, 기술 능력, 신인도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올해 시공능력평가를 신청한 건설 업체는 총 7만 7675개 사로 전체 건설 업체(8만 9877개 사)의 86.4%다.
그러나 이번 시공능력평가 결과를 두고 일각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건설 경기 악화 등 어려운 시장 환경에서도 굵직한 공사를 따내며 선방한 실적을 보였지만 시공능력평가에서는 이에 못 미치는 순위를 기록한 탓이다. 건설사의 공사 수행 능력이나 기술력보다 재무안정성에 높은 비중을 두는 평가 방식으로 제도 취지를 살리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A 건설사의 한 관계자는 “현재는 건설사의 재무 상태에 대한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어 실제 시공 능력과는 다른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부동산 경기 침체기였던 2013년 건설사의 재무 상황 악화 등 시장 상황을 고려해 이듬해인 2014년부터 시공능력평가 방식을 수정한 바 있다. 건설사의 실질 자본금과 차입금 의존도, 자기자본비율, 매출 순이익률 등 재무 상태를 평가하는 경영 평가액 비중을 대폭 확대한 것이다.
실제로 올해 시공능력평가 결과를 보면 경영 평가 항목에서 우수한 점수를 받은 건설사들이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2014년부터 올해까지 10년째 시공능력평가 1위인 삼성물산의 경영평가액은 11조 9415억 100만 원으로 2위인 현대건설(5조 8561억 6100만 원)을 크게 앞섰다. 반면 삼성물산의 공사 실적 평가액은 6조 1942억 7500만 원으로 경영 평가액의 절반 수준이며 현대건설(5조 8020억 7900만 원)과도 격차가 크지 않았다.
반면 우수한 공사 실적에도 불구하고 경영 평가 항목에서 낮은 점수를 받은 건설사들은 시공능력평가 순위 하락을 보였다. 금호건설의 공사 실적 평가액은 지난해 1조 1019억 4800만 원에서 올해 1조 2101억 9000만 원으로 늘었으나 시공능력평가 순위는 같은 기간 15위에서 21위로 6계단 내려왔다. 금호건설의 공사 실적 평가액은 업계 15위인 반면 경영 평가액(4278억 2800만 원)은 37위에 그쳤다.
코오롱글로벌도 올해 시공능력평가에서 19위에 이름을 올리며 지난해(16위)보다 3계단 하락했다. 반면 이 회사의 공사 실적 평가액은 올해 1조 3353억 2000만 원으로 업계 13위에 올랐다. 두산건설의 경우에도 공사 실적 평가액만 보면 9012억 1200만 원으로 업계 20위에 해당한다. 그러나 시평 기준으로는 지난해 24위에서 올해 35위로 떨어졌다.
다만 내년 시공능력평가부터는 새로운 평가 기준이 적용될 예정이라 건설사 순위 변동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국토부는 시공능력평가 제도 개선을 위한 연구 용역을 마무리하고 이달 중 새 기준을 발표할 계획이다. 우선 경영 평가액 비중을 낮추는 대신 신인도 평가 시 품질·안전 제고 노력, 건설노조 불법행위 근절 노력 등을 반영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국토부 관계자는 “최근 건설 경기 침체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경영 평가액 항목 비중에 대한 조정 범위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논의하고 있다”며 “5월 진행된 공청회에서 제기된 건설 업계의 다양한 의견을 검토하고 조만간 개선안을 확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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