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의 임기가 다음 달 24일 끝난다. 이에 따라 윤석열 대통령은 인사청문회 일정 등을 고려해 이달 20일 전후 차기 대법원장을 지명할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몇몇 전·현직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이 차기 대법원장 후보로 거론된다.
6년 임기의 대법원장은 전국 법관 3200여 명의 인사권을 행사하고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다루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재판장 역할을 맡으며 헌법재판관 3인 지명권 등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특히 이번 대법원장 교체는 김 대법원장 체제에서 진보로 기울었던 대법원이 보수 우위로 확실히 재편되는 신호탄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취임 직후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을 지낸 김 대법원장을 사법부 수장에 임명했다. 김 대법원장 취임 이후 우리법연구회·인권법연구회 출신의 진보 성향 대법관이 대거 임명되면서 대법원에 ‘진보 벨트’가 구축됐다. 정치·사회적으로 파급력이 큰 사건을 담당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 등 13명으로 구성된다. 김명수 대법원의 전원합의체는 인권법연구회와 우리법연구회·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출신 등 진보 성향 대법관이 7명으로 과반을 이뤘다. 김 대법원장이 몸담았던 법원 내 특정 단체 출신들이 대거 대법관이 되면서 ‘코드 인사’ ‘정치적 편향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대법원의 진보 우위 구도는 윤 대통령이 취임하고 14개월이 지난 올해 7월에야 막을 내렸다. 지난달 윤 대통령이 중도 성향의 권영준·서경환 대법관을 임명하면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진보 7 대 중도·보수 6’에서 ‘중도·보수 7 대 진보 6’ 구도로 역전됐다. 차기 대법원장에 중도·보수 성향의 인사가 지명되면 ‘중도·보수 8 대 진보 5’로 격차가 더 벌어진다.
대법원의 인적 구성이 바뀌면서 김명수 사법부 6년간 만연했던 정치·이념 편향적 판결에도 일대 변화가 예상된다. 하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권과 코드가 맞는 대법관들이 주류를 이루면서 대법원의 판결이 진보와 보수 어느 한쪽으로 쏠리는 현상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민주국가의 모범적 사법부로 평가받는 미국 연방대법원 역시 정치 편향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미 연방대법원은 지난해 여성의 낙태권이 헌법적 권리가 아니라고 판단한 데 이어 올해 6월 대학 입시의 소수 인종 우대 정책(어퍼머티브 액션)이 위헌이라고 판결하는 ‘우향우 행보’로 민주당 진영의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그럼에도 존 로버츠 대법원장에 대한 평가는 상대적으로 후하다. 9일(현지 시간) 여론조사 기관 갤럽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로버츠 대법원장에 대한 호감도는 43%로 미국 지도자 중 영부인 질 바이든 여사(49%)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2005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임명한 로버츠 대법원장은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지만 사안에 따라 진보의 손을 들어주며 ‘사법부의 균형추’ 역할을 해온 점이 국민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는 요인으로 꼽힌다. 그는 올해 6월 노스캐롤라이나주 선거구 판결에서 진보 성향 대법관 3명과 같은 의견을 냈고 2020년 불법 이민자 문제에서도 진보 쪽에 섰다.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이민정책에 제동을 건 판사를 ‘오바마 판사’라고 비난하자 로버츠 대법원장이 “우리에게는 오바마 판사도, 트럼프 판사도, 부시 판사도, 클린턴 판사도 없다”고 반박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김 대법원장과 특정 연구회 출신의 진보 성향 대법관들은 법리가 아니라 이념을 앞세운 친정부적 판결로 사법부의 위상을 추락시켰다는 비판을 받는다. 조만간 지명될 차기 대법원장은 ‘코드 인사’ ‘코드 판결’로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자초한 김 대법원장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다만 기울어진 대법원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문재인 판사’의 빈자리를 ‘윤석열 판사’로 채우는 일은 없어야 한다. 진영을 뛰어넘는 ‘탈이념’ 판결로 미국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는 로버츠 대법원장 같은 새 사법부 수장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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