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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커튼콜] 오페라의 유령, 그것은 러브스토리인가 스릴러인가

오페라의 유령 속 인물 분석

유령의 매혹적 러브스토리로 세계적 인기 끌었으나

사실은 무명 여배우를 향한 유령의 가스라이팅

집착 강한 유령과 이를 극복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스릴러물






10만 원 넘는 돈을 내고 뮤지컬 공연장에 갔는데, 앞 사람 키가 너무 커 두 시간 넘게 고개만 기웃거리다 온 적 있나요? 배우의 노래 뿐 아니라 숨소리까지 여운이 남아 같은 돈을 내고 본 공연을 또 본 적은요? 그리고 이런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어 혼자만 간직하느라 답답한 적은 없나요? 세상의 모든 뮤덕(뮤지컬 덕후)의 마음을 대신 전하기 위해 뮤덕 기자가 나섰습니다. 뮤지컬 애호가를 위한 뮤지컬 칼럼, ‘어쩌다 커튼콜’과 함께하세요.


“도대체 크리스틴이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야?”

한 남자가 연인으로 추정되는 여자에게 묻습니다.

“사랑하는 건 라울이지”

“그런데 왜 유령 말을 자꾸 듣는 거야..?”

“글쎄…가스라이팅 당해서?”

부산 드림씨어터에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보고 나오던 중 있었던 일입니다. 뒷좌석에 앉은 연인으로 추정되는 두 남녀가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죠. 남자는 도무지 크리스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며, 싫으면 그냥 인연을 끊어버리면 되지 왜 저렇게 질질 끌고 있냐며 볼멘 소리를 했죠. 특히 “유령에게 여지를 주고 있는 거 아니야?”라는 질문이 귓가에 생생했습니다. 사실 맞는 말입니다. 오페라의 유령은 사실 스토킹 범죄자의 괴랄한 스릴러물 아닐까요. 오늘은 세계적인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색다른 방법으로 해석해볼까 합니다. 오페라의 유령을 보며 혼자 하던 생각을 웃자고 정리해 보는 것이니 생각이 다르더라도 너무 분노하지 말아주세요.



해석1. 유령이 크리스틴을 고른 이유, 의지할 곳이 없어서…


극장에서 공연하는 수많은 무명에 가까운 배우 중 왜 크리스틴이 ‘음악의 천사’가 된 걸까요. 크리스틴이 가장 아름다워서? 그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배우는 한 두명이 아닐텐데요. 저는 아마 유령이 전적으로 의지할 곳이 없는 착한 여배우를 선택한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크리스틴의 아버지는 돌아가셨죠. 숫기도 없고, 오로지 꿈만 갖고 있습니다. 불행히도 남들이 싫어하는 외모를 갖게 된 유령은, 크리스틴이라면 열등감 가득한 자신에게 어울리는 짝이라고 생각한 듯합니다. 그래서유령은 크리스틴에게 ‘넌 나의 음악의 천사야’라고 말하며, 노래를 가르쳐준다고 말합니다. 잘 하면 칭찬하고, 작품의 여주인공을 바꿔가면서까지 전폭적으로 지원해주죠. 하지만 한시라도 한눈을 팔면 분노합니다. 화내고 꾸짖고 벌을 내리기 때문에 크리스틴은 유령의 통제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2023년 우리는 이런 현상을 가스라이팅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해석 2. 시종일관 화난 유령, 이유는 ‘자격지심’


오페라의 유령 중 유령으로 열연하는 조승우 배우. 사진제공=클립서비스


그래서 이 작품에서 유령은 시종일관 화가 나 있습니다. 네 명의 배우 모두가 열창하고 열연하지만 오페라의 유령에서 제일 중요한 건 ‘유령의 분노’라는 감정입니다. 유령은 크리스틴이 떠날까봐 화가 나고, 크리스틴이 떠나서 정말 화가 납니다. 그리고 크리스틴이 다른 곳을 바라봐서 화가 폭발하죠. 조승우 배우는 가끔은 먹이를 물고 꼬리를 휘두르는 악어처럼 화를 내고 또 어떨 때는 버림받은 불쌍한 고양이처럼 화를 내더라고요. 유령이 무대 천장에 붙어 있는 장치에서 나와 아래를 내려다보는 장면에서는 실제로 ‘오늘 꿈에 나올까 무섭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공포스러웠지만, 크리스틴에게 ‘가라’고 소리치면서 울부짖을 때는 누구라도 가서 안아줘야 할만큼 안쓰러웠습니다.

그래서 오페라의 유령을 N차 관람하는 분들은 서로 다른 유령 배우를 선택해 각 배우가 어떻게 화 내는지 비교해보는 것도 쏠쏠한 관전 포인트입니다. 저는 조승우 배우와 전동석 배우의 공연을 봤는데요. 앞서 말한 조승우 배우와 달리 전동석 배우는 성악 전공자 답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화를 냅니다. 조승우 배우가 야수처럼 외적으로 화를 표출한다면 전동석 배우는 심연 깊은 곳에 분노가 있는 사람처럼 슬프게 화를 내더라고요.

이처럼 유령이 시종일관 화나 있는 이유는 ‘자격지심’ 때문입니다. 사실 유령은 오은영 박사가 보면 당장 만나서 피드백에 들어갈 정도로 ‘금쪽이’ 그 자체입니다. 불행한 일을 겪어 불행한 어린시절을 보냈지만 그 분노를 주변으로 표출하다니! 감정을 절제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거죠. 그리고 애정 결핍이기 때문에 크리스틴에게 광기를 갖고 집착합니다. 여기에 극장 사람들을 통제하고 협박하죠. 유령이 조금 더 자존감이 높았다면 지하에 자신만의 ‘던전’을 만들고 양지의 사람을 괴롭히기보단 양지로 나와 사람들에게 ‘노래 선생님’이 되어 돈벌이라도 할 수 있었을텐데 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해석3. 크리스틴은 유령에게 1도 관심 없다


오페라의 유령 중 손지수 배우가 연기하는 크리스틴. 사진=클립서비스


1] 크리스틴X손지수

손지수 배우는 체구가 작고 아담합니다. 그리고 눈웃음이 매력 포인트죠. 크리스틴이 라울과 만나는 첫 장면 있잖아요. 오랜만에 만난 라울이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하니, 크리스틴은 이렇게 말합니다.

‘안돼요, 라울! 그 분은 엄격해요’

손지수 배우가 연기하는 크리스틴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대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손지수의 크리스틴은 시종일관 팬텀을 무서워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사랑을 믿죠. 손지수의 크리스틴이 유령에게서 벗어난 건 라울이 크리스틴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라울이 크리스틴을 유령에게서 구해낸 거죠. 사실 조승우 배우의 공연을 보고 나면 모두들 조승우 이야기만 하잖아요. 하지만 저는 조승우-손지수 배우의 공연을 보고 한동안 ‘크리스틴-라울’ 때문에 마음이 몽글몽글했습니다. 첫사랑에서 진짜 사랑이 되는 과정이 어찌나 풋풋하고 순수한지, 조승우 배우가 손지수 배우에게 마구 화를 내는데 크리스틴과 라울의 사랑이 단단해질수록 크리스틴은 유령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는 듯했습니다. 유령의 표정은 마치… 사춘기 아이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모습이었어요. 그래서 유령은 라울에게도 무척 화가 납니다. ‘내 아이를 탈선으로 이끄는 나쁜 친구’를 보듯 라울을 배척합니다. 사실 조승우-손지수의 공연에서 저는 유령이 크리스틴을 음악의 천사로 만들고 싶은데 라울이 연습에 방해가 돼서 싫어한다고 생각했습니다.

2] 크리스틴X송은혜

하지만 송은혜 배우가 연기하는 크리스틴을 보고 해석은 또 달라졌습니다. 송은혜 배우가 연기하는 크리스틴은 유령을 가여운 눈빛으로 바라봅니다. 그래서 송은혜 배우가 등장하는 오페라의 유령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손지수 배우와 달리 유령의 가면을 벗기는 부분입니다. 나에게 노래를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누구인지 호기심을 갖고 있고, 그것을 알아야만 자신이 미래를 향해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래서 송은혜 배우가 연기한 크리스틴은 유령에게 질문하는 모습이 잘 드러났고, 라울이 크리스틴을 지켜준다기보다 라울과 함께 이 난관을 극복해 나가는 듯한 모습으로 보여졌습니다. 마지막 라울을 살리기 위해 유령에게 자신을 내던지는 장면에서도 유령을 불쌍하게 생각하는 분위기였죠.

하지만 결론은 두 크리스틴 모두 유령에게 관심이 1도 없었습니다. 손지수 배우는 라울에게 빠져 허덕이고 있고 송은혜 배우는 자기애가 강해 보였어요. 두 사람 중 누구도 정체 모를 유령에게 단지 노래 좀 가르쳐준다는 이유로 마음을 내줄 생각은 없어 보였습니다.

오페라의 유령은 전세계 188개국에서 1억 60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관람한 메가 히트 작품입니다. 하지만 현대적 관점에서 오페라의 유령은 과연 ‘러브스토리’일까요 ‘스릴러’일까요. 저의 선택은 ‘스릴러’입니다. 제가 크리스틴이라면 무척 두려울 거 같거든요. 하지만 선택은 공연을 본 여러분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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