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둘러싼 논쟁거리 중에 하나는 2% 물가 목표제다. 뉴질랜드 중앙은행이 1990년 물가 상승률을 2%로 관리하는 목표를 채택한 후 2012년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도 이를 도입했다. 논란은 지난해 특히 심했다. 인플레이션이 9%까지 치솟자 2%는 지나치게 보수적인 목표라는 지적이 일었다. 물가가 3%까지 돌아갈 수는 있겠지만 2%까지는 어렵기 때문에 무리해서 이를 추진하다가는 경제가 망가질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연준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논쟁이다. 물가 목표를 3%로 올린다는 것은 구조적인 고물가 시대가 온다고 인정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는 소비자들의 인플레이션 기대치를 높일 것이고 이로 인해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은 더 어려워진다. 연준 입장에서는 적어도 현시점에서는 2% 목표에 대한 흔들림 없는 의지를 강조하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연준의 입장과 별개로 현실에서는 구조적 고물가에 대한 압력이 커지고 있다. 구조적 고물가론은 인플레이션이 앞으로 둔화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라기보다 둔화하더라도 과거 1990~2000년대의 물가 대안정기 수준보다 높게 유지된다는 것이 핵심이다.
핵심 원인은 인력이다. 최근 뉴욕은 물론 미국 남부 텍사스, 북부 미시간에 이르기까지 미국 내 기업인들이나 정책가들을 만나면 이들이 토로하는 고충 1순위가 바로 인력 부족이다. 코로나19 당시 숙련공들이 대거 은퇴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에 옥죄어 놓은 이민이나 비자 제도는 사회적 논란 탓에 쉽사리 다시 넓히지 못하고 있다. 거기에 출산율은 떨어지고 젊은이들은 점점 더 생산직을 기피한다.
이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월스트리트저널(WJS)은 베트남에 공장을 둔 한 영국 의류 업체 창업자의 말을 인용해 “모두가 인스타그래머나 사진작가·스타일리스트가 되고 싶어하고 커피숍에서 일하기를 원하지, 공장에서 일하려 하지는 않는다”고 보도했다. 이런 상황에서 인력을 뽑으려면 임금을 올려야 한다. 사내 요가 프로그램이나 유치원 건립 등 고용 유지 비용도 늘려야 한다. 이는 곧 상품의 가격이 오른다는 의미다.
WSJ는 전 지구적인 이런 현상을 두고 “초저가 상품의 시대에 대한 위협”이라고 표현했다.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정부가 출산을 강제할 수도 없고 이민정책을 밀어붙이기도 힘들다. 인스타그램이나 틱톡도 마찬가지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정말로 생산직 기피 현상의 원인 중 하나라고 하더라도 이를 폐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뉴욕 증시 투자자 사이에서 연착륙 시나리오가 확산되지만 실체가 성장에 대한 자신감인지, 물가에 대한 자신감인지는 모호하다. 과연 인플레이션이 2%까지 낮아지면서 연착륙이 가능할지 콕 집어 묻는다면 확답하기는 쉽지 않다. 월가 투자은행(IB) 중 경기 침체를 전망하는 곳이 연착륙을 전망하는 곳의 2배인 점은 이 때문이다. 일례로 씨티그룹은 내년 상반기 경기 침체에 빠지는 시나리오를 기본으로 삼고 있다. 미국의 성장 엔진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면 침체가 불가피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연착륙이 가능하겠지만 이 경우 인플레이션이 2%까지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씨티그룹은 보고 있다.
이에 연준의 2% 물가 목표제 논란은 언제든 다시 불거질 수 있는 주제다. 초저가 시대의 종말이 현실로 드러난다면 2%는 맞지 않는 목표가 된다. 학생들의 평균 체격이 커졌는데도 여전히 예전 크기의 책걸상을 강요하는 격이다.
미국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저소득 국가의 인건비가 오르면 우리나라도 영향을 받는다. 생산 직원을 구하기 어렵기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인스타그램의 인기도 그 어느 곳보다 뜨겁다. 더욱이 출산율은 그 어느 곳보다 낮고 이민정책은 공론화조차 쉽지 않은 분위기다. 인플레이션 사정이 미국이나 유럽보다 낫지만 이는 우리가 세계의 구조적 변화에서 자유롭다는 의미는 아니다. 통화정책이든, 이민이나 계층 이동 사다리를 놓는 정책이든 구조적 고물가 시대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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