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서울시장 보궐선거 사전투표’ 기간이던 2021년 4월 2일 부친인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와 사전투표장을 찾았다. 당시는 차기 대선후보 유력 주자로 거론됐던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에서 퇴임한 후 가진 첫 공식 정치 일정이었다. 윤 대통령은 그렇게 자신의 ‘제1 멘토’로 꼽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정치인으로 가는 첫 발걸음을 뗐다.
15일 별세한 윤 명예교수는 윤 대통령의 가치관 형성에 절대적 영향력을 끼친 인물로 평가된다. 학창 시절 윤 대통령은 계량통계학 분야의 권위자였던 부친을 동경해 경제학과 진학을 꿈꾸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서울대 법대 입학 기념 선물로 윤 명예교수에게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저서 ‘선택의 자유’를 받았는데 이는 ‘자유주의자 윤석열’의 사상적 근간이 됐다.
고인은 엄격하면서도 자상한 면모를 지녔다. 자녀 교육을 중시했던 윤 명예교수가 친구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던 대학생 윤 대통령의 마음을 다잡기 위해 고무호스로 볼기를 때린 이야기가 유명하다. 하지만 연말 연초에 대학교 제자들에게 연하장을 일일이 보낼 만큼 따뜻한 마음을 지닌 스승이기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들의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술 한 잔씩 따라주며 주도를 가르쳐준 친근한 아버지의 모습도 있었다.
‘원칙주의자’는 윤 명예교수를 일컫는 수식어다. 한국경제학회 회장을 지낸 저명한 학자이나 윤 명예교수에게는 박사 학위가 없다. 윤 명예교수가 대학에 다니던 1950~1960년대에는 석사 학위만 보유한 교수들을 위해 간단한 논문으로도 박사 학위를 주는 ‘구제(舊制)박사’제도가 있었지만 윤 명예교수는 ‘그런 식으로 학위를 받는 게 무슨 소용이냐’며 거부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의 강골 기질은 아버지의 이러한 신념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결과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올 2월 부친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연세대 학위수여식을 찾아 “연세의 교정은 제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 아버지의 연구실에서 방학 숙제를 하고 수학 문제도 풀었다”며 부자지간의 각별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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