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일론 머스크가 창업한 스페이스X에서 달·화성 탐사용 우주선 ‘스타십’의 궤도 비행 실험이 있었다. 발사의 전 과정이 온라인으로 생중계됐는데 그 광경은 한마디로 충격적이었다. 오랜 시간 엄청난 비용을 들여 제작한 우주선 스타십과 1단 추진체인 슈퍼헤비가 분리되지 않고 발사된 지 4분 만에 공중에서 폭발해 불타기 시작했다. 곧이어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연구진이 환호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내가 뭔가 잘못 보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미국에는 ‘실패를 당연시하고 격려하는 문화’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필자는 생각한다. 스페이스X의 스타십 프로젝트는 우주개발 역사상 그 규모에 있어 인류 최고의 도전이라 할 수 있다. 스타십 우주선은 길이가 50m, 1단 로켓인 슈퍼헤비는 70m에 이른다. 특히 슈퍼헤비는 물체를 밀어내는 힘에 해당하는 추력이 개당 230톤에 이르는 랩터 엔진을 33개나 탑재한 총 추력 7590톤에 달하는 초거대 로켓이다. 5월 3차 발사에 성공한 누리호의 1단 로켓이 75톤 엔진 4개를 탑재한 300톤급이니까 슈퍼헤비의 규모가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스타십의 발사 도전이 단 번에 성공할 리 없고, 그래도 이륙에 성공해 4분이나 비행한 것 자체가 인류 최초이자 최고의 위대한 성과를 이룬 것이다. 연구진은 이번 실패를 통해 성공의 가능성을 높여줄 귀중한 데이터를 얻었고 그것에 그토록 환호한 것이다.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보통 프로젝트가 실패로 돌아갔을 때 그 프로젝트를 총괄했던 리더는 책임을 지고 자리를 떠난다. 하지만 NASA는 그렇지 않다. 해당 분야 세계 최고의 실력자를 앉혀놓은 만큼 그 사람이 실패했다면 다른 어느 누구도 그 프로젝트를 성공시킬 수 없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실패를 겪은 리더가 그 실패에서 얻은 경험치를 토대로 또다시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성공시킬 수 있도록 꾸준히 지원하는 것이 NASA의 연구 문화인 것이다.
존 에프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아폴로 계획 연설에서 “달에 가는 것이 쉬워서가 아니라 반대로 어렵기 때문에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추진하고 있는 대형 연구개발(R&D) 프로젝트들이 미국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는 것은 세계 1위의 초강대국 미국이 아니면 어느 나라도 할 수 없는 일이며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 해야 한다는 믿음과 자부심에 바탕을 둔 세계관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고 또 맞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라고 못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세계 10위권의 과학기술 강국의 반열에 올라선 지금 많은 과학기술 분야 종사자들은 우리나라가 주요 5개국(G5) 수준의 과학기술 강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 즉 선도자로 앞서나가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한다. 이제 이것이 말로만 그치지 않고 진정한 선도자로 체질을 바꾸기 위해서는 그동안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실패가 없을 수 없고, 또 실패를 통해서 더 큰 결실을 얻을 수 있다. 결국 우리는 이제 실패할 여유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R&D 생태계는 지나치게 파편화돼 있다고 지적받고 있다. 기회의 땅이라 불리는 실리콘밸리의 별칭은 아이러니하게도 ‘성공의 요람’이 아니라 ‘실패의 요람’이다. 실리콘밸리에서 스타트업이 실패할 확률이 80%를 넘고 소위 대박을 터트리기까지는 평균 4회 정도의 실패를 겪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 실패를 견뎌내고 마침내 얻는 성공의 결실은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이 크다. 우리나라의 R&D 생태계에도 이제는 실패해도 박수쳐주는, 실패를 자산으로 여기는, 실패할 여유가 있는 문화가 진정으로 만들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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