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5월 발사에 실패한 군사 정찰위성을 이달 24~31일 재발사하겠다고 예고하며 국제사회를 향한 위협 수위를 높이고 있다. 한미 및 한미일 안보 협력을 견제하는 동시에 북한 정권 수립 75주년을 앞두고 업적을 과시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다른 한편에서는 태풍 피해 등의 책임을 물어 김덕훈 내각총리를 강하게 질책하고 국경 봉쇄를 단계적으로 해제하는 등 내부 조치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이를 두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강화된 대북 제재와 극심한 경제 침체 등으로 흔들리기 시작한 내부 체제를 다잡기 위한 대내외 카드를 총동원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일본 언론 등에 따르면 북한은 22일 일본 해상보안청에 24일 0시부터 31일 0시 사이에 인공위성을 발사하겠다는 계획과 함께 해상 위험 구역 3곳을 설정해 통보했다. 북한이 통보한 위험 구역은 북한 남서쪽 서해 해상 2곳과 필리핀 동쪽 태평양 해상 1곳 등으로 5월 통보 때와 유사하다.
이는 북한의 핵미사일 및 사이버 공격 등에 대응하기 위한 워킹그룹 창설 등 한미일정상회의 결과에 반발하는 차원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의 논평을 통해 “18일 미·일·괴뢰 우두머리들이 조선 반도에서의 핵전쟁 도발을 구체화, 계획화, 공식 구체화했다”며 “사상 초유의 열핵대전이 각일각 현실로 다가들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정권 수립 75주년 기념일인 ‘9·9절’을 앞두고 국방 분야의 최우선 과제인 군사 정찰위성 발사 성공으로 성과를 내려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동안 북한이 핵 개발에 성공하면 경제적 어려움이 해결될 것으로 주민들에게 선전해온 만큼 이를 정당화할 안보·과학적 성과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같은 날 김 위원장은 침수 피해 지역을 찾아 경제난의 책임을 김 내각총리에게 돌리기도 했다. 노동신문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책임자들을 ‘정치적 미숙아들’ ‘틀려먹은 것들’ 등으로 표현하며 “책임 있는 기관과 당사자들을 색출하여 당적·법적으로 단단히 문책하고 엄격히 처벌하라”고 대규모 인사 조치를 지시했다. 이에 대해 통일부 당국자는 “핵 개발로 인한 대북 제재와 국경 봉쇄 조치 등 잘못된 정책 결정으로 인해 초래된 어려운 경제 상황에 대한 책임을 내각에 전가한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이 태풍·무더위 등에 따른 경제 피해로 극에 달한 북한 주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내부 결속 다지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최근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강화와 경제개발5개년 실패 등으로 삶이 열악해진 북한 주민들의 불만이 고조되면서 김 위원장의 체제가 대내외적으로 궁지에 몰렸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가정보원은 17일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올해 북한 내 식량난으로 인한 아사자가 지난 5년 평균 대비 두 배 이상 급증했다고 보고했다. 이 자리에서는 주민들의 불만이 임계치에 달하면서 사제폭탄 투척 등 체제 위협에 대한 불안감도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경제적 고립을 벗어나기 위한 국경 봉쇄 해제에도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간 북한은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통해 경제적 자립을 목표로 해왔지만 이 역시 한계에 봉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북한은 이날 공영 항공사인 고려항공 소속 여객기의 중국 베이징 노선 운영을 3년 만에 재개하며 본격적인 국경 개방을 알렸다. 앞서는 국제태권도연맹(ITF) 세계선수권대회 참가로 북중 육로를 먼저 개방하기도 했다. 이 외에 북한은 7월 열병식 이후 북중 무역 재개와 재래식무기 대량생산을 통한 러시아와의 무기 거래 등을 통해 경제적 활로를 찾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편 정부는 18일 미국 캠프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정상회의 결과를 바탕으로 긴밀한 한미일 공조를 통해 북한의 도발에 대응해나가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정부는 긴밀한 한미일 공조를 바탕으로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의 불법적인 도발에 단호히 대응해나갈 것”이라면서 “전례없이 고도화되고 있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도발에 앞서 맞서서 우리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책무”라며 강경 대응 방침을 재확인했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이날 통일정책포럼에서 한미일의 강력한 대북 억제를 강조하며 “북한 변화의 첫 단계는 북한이 개발하고 있는 핵무력이 정권·체제 생존의 핵심이 아니라 오히려 고난과 붕괴를 촉진하는 요인이라는 점을 절감하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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