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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유럽 맞서 '일본판 IRA' 꺼내든 日

반·배 자국생산땐 稅우대 신설

"경제·안보 관점서 공급망 재편"


세계 각국이 첨단산업의 공급망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기 위한 기업 지원책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유럽연합(EU)은 핵심원자재법(CRMA)을 각각 발표하며 반도체와 전기자동차 배터리의 자국 내 생산을 촉진하는 가운데 일본 역시 국내 생산 기업을 우대하는 세제 마련에 나섰다. 반도체·2차전지 등 첨단산업 경쟁에서 미국과 EU에 맞서기 위해 ‘일본판 IRA’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31일 2024 회계연도 세제 개정 요망에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의 국내 생산·판매량에 따라 세금 혜택을 주는 ‘전략물자 생산 기반 세제’ 신설 방안을 담았다. 해당 세제가 마련되면 설비투자 비용에 국한됐던 기업의 세금 혜택 범위가 제품 생산 비용까지 확대된다. 적자기업을 염두해 세액공제 한도는 20년간 이월할 수 있도록 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중국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배터리 등의 공급망 구조를 재편하기 위한 것”이라며 “경제안보 관점에서 미국 등에서 자국 내 투자를 촉진하는 방안이 잇따르자 일본도 환경 정비에 나섰다”고 전했다.

아울러 내년 3월 만료되는 탈(脫)탄소 설비투자 지원 제도인 ‘탄소 중립(CN) 투자 촉진 세제’의 시한 역시 늘릴 방침이다. 기업들은 해당 세제를 통해 탈탄소 설비투자액의 최대 10%를 법인세에서 공제받을 수 있다. 그러나 적용 기간이 3년으로 짧아 제대로 활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해 해당 세제의 적용 액수는 1억 엔으로 전망치 10억 엔을 크게 밑돌았다. 일본 정부는 세제 개정을 통해 적용 시한을 6년 정도로 대폭 늘릴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이 첨단산업에 대한 세금 혜택 등 지원 방안을 대거 확대한 데는 미국 등이 자국 생산을 촉진하기 위한 법안을 잇따라 마련한 상황에서 공급망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의도가 담겼다. 실제로 경제산업성은 이번 세제안을 마련하기 위해 북미산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미국의 IRA를 참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IRA는 자국 내 배터리 생산량이나 재생에너지 발전량에 따라 법인세를 감면해준다. IRA의 세금 혜택을 노려 제조·생산·조립 설비를 미국으로 이동시키는 ‘온쇼어링’ 효과는 실제 나타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IRA와 미국 내 반도체 시설 투자와 연구개발(R&D)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반도체지원법이 발표된 지난해 8월 이후 미국에서 최소 2240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및 청정에너지 관련 투자가 발표됐다. 이를 통한 고용 창출 효과는 10만여 개에 이른다.



유럽 역시 ‘유럽판 IRA’로 불리는 CRMA와 탄소중립산업법(NZAI) 등을 서둘러 마련하는 등 자국 산업 보호에 나섰다. EU가 3월에 내놓은 CRMA 초안은 2030년까지 제3국에서 생산된 원자재 의존도를 연내 전체 소비량의 65% 미만으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어 핵심 광물에 대한 연간 수요 대비 역내 채굴 비중을 10%, 제련·정제 비중은 40%까지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CRMA에는 중국에 대한 광물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다양한 조치가 포함돼 있다. NZAI법을 통해서는 배터리·태양광·풍력발전 등 탄소중립 전략산업의 제조업량을 같은 기간 역내 수요의 40%까지 끌어올릴 방침이다.

일본의 이 같은 움직임에는 미국과의 첨단산업 동맹을 확대하는 한편 중국 의존도가 높은 공급망은 점차적으로 줄이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과 네덜란드·대만 등 반도체 동맹이 중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강화하고 미국과 서방을 중심으로 한 첨단산업 동맹군을 형성하고 있는 만큼 중국에 치우친 배터리 원자재 등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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