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올 11월 디지털시장법(DMA) 시행을 앞두고 이른바 ‘게이트키퍼’ 플랫폼 명단 확정에 나서자 빅테크가 앞다퉈 자사 서비스의 인지도 및 이용자 부족을 항변하고 나섰다. 법안이 규제 대상 서비스에 막대한 책임을 지우는 성격이 강한 만큼 유럽 시장 내 ‘업계 살생부’나 다름없는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않기 위한 고육책이다.
5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EU 당국은 DMA상 게이트키퍼에 해당하는 플랫폼을 지정하면서 애플의 ‘아이메시지’와 마이크로소프트(MS)의 검색엔진 ‘빙’의 채택 여부를 두고 고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애플과 MS는 자사 서비스에 대해 “게이트키퍼가 되기에는 충분한 인지도와 이용자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EU 경쟁 당국은 시가총액 750억 유로(약 107조 원) 이상, 월간활성이용자수(MAU) 4500만 명 이상인 기업 서비스를 게이트키퍼 요건으로 내세웠다.
빅테크들이 스스로 서비스의 인지도와 점유율을 깎아내리는 ‘역(逆)PR’에 나선 데는 이유가 있다. 게이트키퍼로 채택되면 무거운 책임이 부과되기 때문이다. DMA상 게이트키퍼는 핵심 플랫폼사업자로서 이용자에게 경쟁사 서비스도 상호 호환되도록 동등하게 제공해야 한다. 이를 어길 경우 글로벌 매출의 10%가 벌금으로 매겨진다. 이를테면 애플의 메시징 앱인 아이메시지가 게이트키퍼로 채택되면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온 메시지도 송수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메타의 왓츠앱의 경우 타사와의 서비스 호환을 위해 수천 명의 인력을 투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애플 아이메시지는 아이폰 이용자들 사이에서만 데이터 차감이 없고 타 메시지 앱과의 호환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게이트키퍼로 지정되면 이 문제를 수정해야 한다. 아이메시지는 애플 측에서 이용자 수치 등을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이용자 규모는 10억 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이용자에게 경쟁 서비스에 대한 선택권을 부여해 점유율 판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도 민감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MS의 빙 측은 “빙의 점유율이 3%에 불과해 규제를 받을 경우 더 큰 불이익을 입게 된다”며 “특히 빙 이용자들에게 구글 검색엔진 선택권을 항상 제공하면 구글의 점유율이 오히려 높아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 구글 검색엔진을 비롯해 메타의 페이스북·인스타그램·왓츠앱, 바이트댄스의 틱톡 등은 이미 규제 대상으로 확정됐다. 게이트키퍼 최종 명단은 6일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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