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흔들리고 있는 중국이 재정·통화·산업 등 3대 경제정책 모두에서 딜레마에 빠져들고 있다. 일부 서방 전문가들은 중국 경제가 일본식 디플레이션에 빠지지 않으려면 대규모 재정정책을 통한 ‘충격요법’으로 경제 심리를 반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지방정부가 막대한 빚에 허덕이고 있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렇다고 금리를 대폭 내리는 통화정책을 활용하자니 위안화 약세 및 부동산 과열 우려 탓에 여의치 않다. 중국이 신(新)성장 동력으로 보고 있는 첨단산업도 서방의 전방위 견제로 적신호가 켜졌다.
◇부채 막혀 재정정책 제한=최근 세계은행(WB) 중국담당이사였던 버트 호프만은 블룸버그에 “중국이 기대 침체(expectations recession)를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국민들이 저성장이 계속된다고 믿기 시작하면 이는 결국 자기실현적 효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과거와 같은 경제 호시절이 오지 않는다는 인식이 중국인들 사이에서 굳어지면 모두가 소비를 줄일 것이고 이는 다시 경기 둔화로 연결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생긴다는 이야기다. 블룸버그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경제의 역동성이 사라지는 일본화로 끝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정부가 화끈한 재정정책을 통해 중국인에게 경제 활성화에 대한 믿음을 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중국 중앙은행 자문가인 카이팡은 소비자에게 직접적인 부양책을 써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방·중앙정부 모두 여유가 없다. 골드만삭스가 분석한 LGFV(지방정부 자금 조달용 특수법인) 차입금을 포함한 지방정부의 총부채는 23조 달러(약 3경 원)에 달한다. 경기 둔화 와중에 지방정부의 토지 판매 수입이 급감하고 LGFV에서 차입한 돈으로 투자한 인프라 개발이 잇따라 실패한 결과다. 중앙정부는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3% 내로 관리하겠다는 목표를 고집하고 있어 중앙정부의 재정 곳간을 열기도 마땅치 않다.
◇기준금리 확 내리자니…위안화 약세 우려=통화정책을 통한 경기 부양도 쉽지 않다. 인민은행은 지난달 21일 1년 만기 대출우대금리(LPR)는 0.1%포인트 내리고 5년 만기 LPR은 동결했다. 시장에서는 기준금리로 통용되는 LPR을 1년짜리와 5년짜리 모두 0.15%포인트씩 낮출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찔끔’ 인하에 그쳤다.
외신들은 “중국이 처한 딜레마를 드러낸 것”이라고 진단했다. 중국의 경기 침체 우려로 위안화 가치는 올 들어 5%가량 하락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금리를 과도하게 내리면 위안화 약세를 부채질할 수 있다. 아울러 해외 자금의 유출도 한층 속도를 낼 수 있다. 십수 년간 누적된 부동산 버블이 터지며 유동성 문제가 불거졌는데 금리를 대폭 인하하면 부동산 부실 개발을 부추길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기술 굴기는 서방 견제에 적신호=문제는 중국이 부동산 및 인프라 개발에 의존했던 경제 체질을 바꾸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는 첨단산업 개발도 미래가 밝지 않다는 점이다. 중국이 2009년부터 현재까지 전기차 관련 보조금과 세금 감면에만 투입한 돈이 2000억 위안(약 36조 원)을 넘는다. 반도체의 경우 2025년까지 자급률 70% 달성을 목표로 정부와 국영기업이 2014년부터 ‘국가반도체산업투자펀드’를 설립해 기업들을 지원하고 있다. 1·2기 펀드에 현재까지 총 3428억 위안(약 62조 400억 원)이 투입됐으며 3기 펀드는 3000억 위안 규모로 출시될 것으로 알려졌다. 전기차에 들어간 돈과 반도체 1·2기 펀드에 투입된 돈을 합하면 100조 원에 육박한다.
하지만 중국의 기술 굴기가 단기간에 성공할 것으로 보는 이들은 거의 없다. 미국이 중국의 첨단 기술 개발을 국가 안보 관련 사안으로 규정하고 동맹국들과 함께 전방위적 규제에 나섰기 때문이다. 반도체 제조 장비 강국인 네덜란드와 일본이 미국의 압박 끝에 올여름부터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반도체 수출 규제를 실시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한국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 따르면 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노광장비의 중국 내 자급률은 현재 약 5%에 불과하다.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전기차 산업도 안심하기는 이르다. 비야디(BYD) 등 중국 전기차 기업들이 대대적인 유럽 판매 확대 계획을 세우자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반덤핑 및 상계관세 조사 착수를 검토하고 있다. 미 경제 전문 매체 포브스는 “(서방의 견제에 더해) 중국의 디플레이션 문제까지 떠오르며 보조금이 견인해온 중국의 ‘전기차 산업 붐’이 끝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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