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으로 점유한 물건이나 부동산을 위력으로 빼앗기더라도 법적으로 돌려달라고 요구할 권리가 없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부동산관리업체 A사가 시공업자 B씨를 상대로 낸 건물명도 소송에서 원심의 원고 패소 판결을 지난달 18일 확정했다고 8일 밝혔다.
B씨는 2012년 10월 건설사와 충북 청주의 한 오피스텔을 짓기로 계약하고 준공검사까지 마쳤으나 공사대금을 받지 못하자 공사대금을 요구하며 건물을 점유해 유치권을 행사했다. 이후 건물의 공사대금 채권은 2016년 A사가 넘겨받았다. A사 대표이사는 2019년 5월23일 건물에 찾아가 B씨와 유치권 문제로 말다툼을 하다 그를 폭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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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사 대표이사가 다음 날 밤에도 건물에 찾아오자 B씨는 위협을 느끼고 건물을 떠나면서 A사가 건물의 점유자가 됐다. 며칠 뒤 B씨는 30명의 용역 직원을 동원해 벽돌로 창문을 깨고 강제로 문을 여는 등 위력을 행사해 A사 직원들을 내쫓고 건물을 다시 점유했다. 이에 A사는 건물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냈다.
그러나 1, 2심은 A사의 청구가 부당하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의 판단도 같았다. 대법원은 A사 대표이사가 B씨를 폭행해 쫓아낸 뒤 점유한 것과 B씨가 용역직원들과 함께 건물을 탈환한 것 모두 민법상 '점유의 침탈'이라고 봤다. 이런 상황에서 A사의 청구를 받아들이면 B씨가 반대로 똑같은 소송을 내도 받아들여야 해서 소송 자체가 무용한 일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B씨의 점유탈환 행위가 민법에서 정한 자력구제의 한계를 벗어난 것이라고 하더라도 먼저 점유를 침탈한 A사는 B씨에 대해 점유 회수를 청구할 수 없다"며 A사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의 판단이 타당하다고 봤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른바 '점유의 상호침탈' 사안에서 점유회수청구의 허용 여부에 관한 법리를 최초로 판시한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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