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 해상 실크로드)에 맞서 인도·중동·유럽을 철도와 항만으로 잇고 이와 연계된 인프라를 구축하는 광범위한 프로젝트가 미국 주도로 출범했다.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차단하고 중동의 평화 체제를 구축하며 유럽의 러시아 에너지 의존을 줄이겠다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다각도 구상이 이 프로젝트에 고스란히 담겼다. ★본지 9월 9일자 3면 참조
백악관은 9일(현지 시간) 미국·인도·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프랑스·독일·이탈리아와 유럽연합(EU) 정상이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인도·중동·유럽경제회랑(India-Middle East-Europe Economic Corridor·IMEC)을 추진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다음 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주재하는 ‘일대일로 정상포럼’에 앞서 이번 프로젝트를 전격 공개하며 극적인 효과를 노린 것으로 분석된다. IMEC는 인도와 아라비아해를 거쳐 UAE에 이르는 동쪽 회랑과 UAE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요르단·이스라엘을 거쳐 유럽으로 향하는 북쪽 회랑으로 구성된다.
백악관은 “참여국들은 철도를 따라 전력과 디지털 연결을 위한 케이블 및 청정수소 수출을 위한 파이프라인을 구축할 것”이라면서 “IMEC는 지역의 공급망을 강화하고 무역을 증진시키며 환경과 사회에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악관은 이를 통해 중동·아시아·유럽의 연결성을 강화하며 나아가 경제적 통합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덧붙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등과 함께한 발표 행사에서 이번 구상이 “진짜 빅딜”이라며 “더 안정되고 번영한 중동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도 “이번 구상은 역사적”이라며 “철도 연결만으로도 EU와 인도 간 교역의 속도를 40% 높일 것”이라고 밝혔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는 “사우디아라비아가 200억 달러를 투자할 것”이라면서 각국이 프로젝트를 즉각적으로 시행할 것을 촉구했다.
이 프로젝트는 중동을 끌어안으려는 미국과 러시아의 대안을 찾는 유럽, 글로벌 지위 격상을 노리는 중동 국가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의 전통적 아랍 우방인 사우디아라비아와 UAE가 중국과의 관계를 심화하는 상황에서 이번 프로젝트가 중국의 영향력을 차단하는 미국의 대응책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EU 역시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중동 국가들과 무역 관계를 확대하려 하며 전 세계 최대 석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중동의 금융 중심지 UAE는 동서양을 잇는 핵심 물류 및 무역 허브로 도약하려는 구상을 갖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미국 등 참여국들은 앞으로 60일간 실무 그룹을 통해 재원 마련을 포함한 구체적인 추진 계획과 시간표를 만들 계획이다.
한편 이번 G20에 시 주석이 참석하지 않은 중국은 비공식 회의에서 미국의 2026년 G20 정상회의 개최 계획에 반기를 든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올해 인도에 이어 브라질·남아프리카공화국 다음 순서로 의장국을 맡을 예정인데 중국이 별 이유 없이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FT는 “중국의 입장은 다른 국가 대표단 소속 외교관들을 놀라게 했다”며 “두 초강대국 간 극심한 갈등상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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