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간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세상을 등진 대전 초등학교 교사가 생전에 가해 학부모들을 신고하는 것을 꺼렸다고 숨진 교사의 남편이 밝혔다.
숨진 교사의 남편 A씨는 12일 "아내가 학부모들로부터 고통을 받아왔지만 교사로서 이들을 신고하는 게 옳지 않다고 생각해왔다"며 "저 역시 이를 지켜보면서도 지금껏 속앓이만 해왔다"고 가슴 아파했다.
이어 "아이들이 많이 불안해한다. 아직 학교에 가려 하지 않아서 집에서 24시간 계속 돌보고 있다"며 "활동에 제약이 많다. 힘을 내려고 하는데도 많이 힘들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대전교사노조는 13일 숨진 교사 유족을 만나 가해 학부모에 대한 경찰 고소·고발 여부, 가해 학부모에 대한 입장, 교사 순직 요청 등 사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노조 관계자는 "유족분들이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라 당장의 입장이나 고소·고발 관련해 자세히 논의된 내용은 없는 상황"이라며 "유족들의 회복을 돕는 데 힘쓰겠다"고 강조다.
이런 와중에 가해 학부모들은 연이어 ‘악성 민원을 제기한 적이 없고 억울하다’는 취지로 입장문을 냈다가 되레 논란에 기름을 끼얹었다.
가해 학부모 중 한 명으로 지목된 체육관장의 아내는 지난 11일 오후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숨진 교사에게 보냈던 문자 메시지를 공개한 바 있다.
그는 "문제행동을 보인 4명의 학생 중 1명은 제 아이가 맞다"면서 "2019년 학기 초 선생님과 두 차례 상담을 하고 심리치료를 추천받아 꾸준히 가정 내 지도에 힘썼다. 선생님의 지도에 불만을 품고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하거나 학교에 민원을 넣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저 역시 아이들을 지도하는 입장에서 고충을 너무 잘 알아 선생님을 함부로 대한다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며 "아이가 2학년으로 진학한 뒤부터는 사적으로 연락하거나 얼굴을 뵌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또 4명의 학부모와 몰려다니며 악성 루머를 퍼뜨렸다는 주장도 부인했다. 그는 "학기 초 불량학생이라고 지적 당한 부모님과 만나서 아이에 대한 고민 상담을 공유한 적은 있으나 따로 주기적으로 만나 선생님에 대한 악의적인 루머를 유포하거나 험담한 일은 절대 없다"며 "같은 동네 주민으로서 오다가다 만나면 인사하고 가끔 차 한 잔 마시는 관계일 뿐"이라고 밝혔다.
이 글에 A씨는 "선생님 남편입니다. 이제 오셨군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라는 댓글을 남겼다.
같은 날 오전에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체육관장의 입장문이 올라오기도 했다.
체육관장은 "기사와 댓글을 읽으며 손이 떨리고 너무 답답했다. 잘못된 행동을 한 사람에게 벌을 주기 위한 마음으로 그러신 것을 알지만 저희는 이번 사건과 아무 연관이 없다"며 "저희는 정말 아니다. 제발 마녀사냥으로 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이에 A씨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습니다"라고 일축했다.
한편 가해 학부모 중 한 명이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음식점은 지난 9일 프랜차이즈 본사의 영업 중단 조치에 이어 결국 폐업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음식점 프랜차이즈 본사는 지난 11일 가맹계약 해지를 공지하며 "해당 점주가 사실관계 여부를 떠나 브랜드와 다른 지점에 피해를 주지 않고자 자진 폐업 의사를 본사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가해 학부모들의 업장 앞에서는 시민들의 성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날 오후 3시께 또 다른 가해 학부모가 운영하는 미용실 앞에는 '관련 가해자 모두 대대손손 천벌 받길'이라는 문구가 적힌 근조화환이 등장하기도 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앱,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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