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제약사 노보노디스크가 2021년 6월 출시한 비만 치료제 ‘위고비’가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주 1회 주사로 약 15%의 체중감량 효과를 내는 위고비는 발매 2년만에 미국, 유럽 등 글로벌 비만치료제 시장을 거의 독점하면서 올 들어 17억 6000만 달러(약 2조 3408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한 달 분량이 200만 원(미국 기준 1349달러)에 육박하는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없어서 못 파는’ 품귀현상이 벌어질 정도다. 위고비는 지난 4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품목허가를 받으며 국내 진출을 앞뒀다. 다만 전 세계적으로 공급량이 달려 빨라야 내년께 출시될 것으로 전망된다.
◇ 체내 호르몬 닮은 GLP-1 유사체, 비만약 흥행 돌풍 주역으로
13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비만치료제 시장은 인크레틴 유사체가 주도하고 있다. 인크레틴은 음식을 먹으면 소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다. 췌장을 자극해 인슐린 분비량을 증가시키고, 인슐린과 반대로 혈당을 높이는 글루카곤을 억제한다.
위고비의 주요 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는 인크레틴 호르몬의 일종인 글루카곤 유사펩타이드(GLP-1)를 모방한 GLP-1 유사체다. 일주일에 1번씩 복부, 대퇴부 또는 상완부에 피하주사하면 GLP-1 호르몬을 흉내내 췌장에서 인슐린 분비를 증가시켜 혈당을 떨어뜨리고 위의 음식물 배출속도를 더디게 하며 간 내 포도당 합성을 감소시킨다. 뇌에 신호를 보내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효과도 나타난다.
실제 위고비는 제2형 당뇨병 환자에게 처방되는 ‘오젬픽’과 성분은 동일한데 용법 용량만 다르다. 당초 노보노디스크는 하루 한 번 주사하는 리라글루타이드 성분의 GLP-1 유사체 ‘빅토자’를 2형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했다. 그런데 부가적으로 높은 체중감량 효과가 주목 받자 주성분의 용량을 늘린 ‘삭센다’를 비만치료제로 선보였다. 이후 주 1회 투여 제형인 세마글루타이드 개발에 성공하자 2017년 2형 당뇨병 치료제 ‘오젬픽’으로 먼저 허가를 받고 용법 용량만 다른 위고비를 비만 치료제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 체중감량 효과 뛰어난데…부작용 적고 질병 예방 부가 혜택도
위고비는 테슬라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가 13kg을 감량한 비결로 지목하면서 입소문을 타더니 췌장에서 인슐린이 전혀 분비되지 않는 1형 당뇨병 환자의 혈당조절 효과를 입증했다. 지난해 세마글루타이드가 알츠하이머 발병을 낮출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 데 이어 최근에는 뇌졸중, 심정지 등 주요 심혈관질환 발생 위험을 20% 낮췄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며 화제를 모았다.
과거 비만치료제들이 심혈관질환이나 간손상, 환각, 우울감 등의 부작용을 이유로 시장에서 퇴출됐던 것과 비교하면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위고비 효과에 노보노디스크의 몸값은 1년새 2배 가까이 뛰었다. 13일 기준 노보노디스크의 시가총액은 4402억 달러로, 덴마크의 국내총생산(GDP)인 약 4060억 달러보다 크다. 이달 초 세계 최대 명품기업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를 제치고 유럽 증시1위 자리를 꿰찼다.
일라이 릴리가 개발한 GLP-1 유사체 ‘마운자로’는 임상3상에서 최대 24kg의 체중감량 효과를 나타내며 비만 시장 유망주로 떠올랐다. 지난해 5월 미국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당뇨병 치료제로 허가 받았을 뿐이지만 오프라벨(허가 외 처방)로 비만 환자들에게 처방되며 품귀현상이 벌어졌다. 마운자로의 상반기 매출은 15억 5000만 달러로 연 매출액은 40억 달러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모건스탠리는 글로벌 비만치료제 시장이 지난해 24억 달러에서 2030년 540억 달러(약 71조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선두주자인 노보노디스크, 일라이릴리는 투약 편의성을 높이거나 GLP-1 외에 글루카곤, GIP 등의 인크레틴 수용체와 상호작용하는 신약을 개발하는 한편 비만 관련 파이프라인을 보유한 바이오텍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화이자, 베링거인겔하임, 암젠 등 거대 글로벌 제약사들도 앞다퉈 비만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비만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만큼 전체 시장의 2~3%만 차지해도 승산이 있다는 계산에서다.
◇ 기전 동일한 ‘삭센다’ 5년째 국내 시장 1위 질주…'위고비'에 정상자리 내줄듯
국내에서도 위고비와 마운자로의 흥행은 예견됐다. 아이큐비아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비만치료제 시장은 967억 원 규모로 역대 최대치를 나타냈다. 위고비의 전신 격인 삭센다가 전체 시장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며 5년째 독점 체제를 굳히고 있다. 전문가들은 GLP-1 유사체의 활약에 당분간 비만 치료제 시장이 흥행을 지속할 것이라 본다.
대한비만학회 국제학술대회(ICOMES 2023) 참석차 방한한 션 와튼 박사(캐나다 와튼메디컬클리닉 내과전문의)는 13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제조 생산이 쉽고 복용이 편리한 경구용 제제가 저렴한 가격으로 출시되면 또 한번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러한 약들도 한계는 있다. 메스꺼움, 구토, 복통, 설사 등 위장관계 부작용이 대표적인데 드물게 우울증 등 정신과적 증상을 호소하기도 한다. 와튼 박사는 “위고비는 16단계에 걸쳐 증량이 필요하다. 전문의와 상의해 본인에게 맞는 용량을 찾는 게 중요하다”며 “약물을 끊으면 본래 체중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