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성동구 성수동 부동산의 대표적인 큰손으로 꼽히는 두 회사는 단연 크래프톤과 무신사다. 이들의 성수동 부동산 사랑에 빌딩 중개 업계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사옥을 성수동에 이전하는 것으로 모자라 일대 건물들을 잇따라 몇 채씩 사들이고 있어서다. 두 회사가 강남·광화문·여의도 등 전통적인 업무지구가 아닌 성수동에 꽂힌 이유는 뭘까. 부동산 업계에서는 ‘회사의 아이덴티티를 보여주는 브랜드 타운 조성’이 그 배경이라고 꼽는다.
1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게임 배틀그라운드를 개발한 크래프톤은 올해 세 번째 성수동 부동산 쇼핑에 나섰다. 매입 대상은 이전과 달리 노후 건물이 아닌 준공 후 4년이 안 된 준신축 건물이다. 메가박스 본사 건물인 ‘메가박스스퀘어’의 매입을 2500억 원에 추진하고 있다. 최고가로 입찰가를 써낸 만큼 업계에서는 사실상 우선매수협상자 지위를 획득한 것으로 보고 있다. 크래프톤은 매입이 완료된 후 메가박스 성수점이 위치했던 층을 포함해 건물 일부를 리모델링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2월 크래프톤은 성수동 경수초 인근에 위치한 상업용 건물 두 동을 총 640억 원에 매입하기도 했다. 두 건물은 크래프톤의 신사옥 예정 부지인 이마트 성수점과 도보로 500m가량 떨어져 있다. 크래프톤은 2021년 11월 미래에셋자산운용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이마트 성수점 건물과 부지를 1조 2200억 원에 매입했다. 크래프톤은 부지 매입을 위해 조성된 부동산 펀드에 2900억 원을 댔다.
크래프톤이 직간접 투자를 통해 현재 성수동에 보유 중인 필지(건물 포함)는 이미 총 6곳이다. 이처럼 크래프톤이 잇따라 성수동 땅을 매입하는 데는 ‘크래프톤 월드’의 조성 목적이 크다고 보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이미 전통적인 대기업이 자리를 잡고 있는 강남·여의도·광화문과 달리 신생 업무지구인 성수동에서 보다 더 적은 비용으로 자유롭고 트렌디한 회사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게임 업계에서는 크래프톤이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해 복합 문화 공간을 조성하려는 목적도 있다고 본다.
크래프톤뿐 아니라 패션 기업 무신사도 2019년부터 성수동 일대 노후 건물을 잇따라 사들이고 있다. 현재 사내에 부동산전담팀을 꾸려 신사옥 건립과 함께 이 일대 부지들을 동시에 개발을 추진 중이다. 220억 원에 사들인 성수동2가 옛 동부자동차서비스 부지와 105억 원에 매입한 성수역 3번 출구 인근 부지 등이 대표적이다.
두 회사가 사들인 부동산 대부분은 성수동2가에 위치해 있다. 토지·건물 빅데이터 플랫폼 밸류맵에 따르면 2019년 이전에는 성수동1가를 위주로 성수동 부동산 거래가 이뤄졌다면 이후에는 매년 성수동2가의 거래량이 성수동1가보다 많았다. 밸류맵 측은 “서울숲을 중심으로 한 성수동1가 매물이 소진되면서 주변으로 관심도가 확대돼 성수동2가 인근 매물의 거래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크래프톤과 무신사의 성수동 부동산 사랑은 기업들의 일반적인 오피스 투자와는 결이 다르다. 빌딩 중개 업계 관계자는 “통상 기업들의 빌딩 투자 원칙은 강남 등 전통적인 업무지구에 사옥을 마련하는 식으로 투자가 이뤄졌다면 최근 성수동에 주목하는 회사들은 테헤란로 건물 한 채를 살 수 있는 값으로 성수동에서는 여러 채를 살 수 있다는 점에 꽂힌 것 같다”며 “성수동에서 여러 채를 한꺼번에 개발해 강남보다 적은 값으로 ‘성수동 하면 크래프톤, 무신사’라는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부동산 업계에서 바라보는 시각은 회의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크래프톤의 메가박스스퀘어 매입가는 대지면적 기준 평(3.3㎡)당 2억 4000만 원, 연면적 기준으로 평당 3000만 원 중반대인데 강남·광화문 대비 저렴하게 매입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또 성수동은 대기업 같은 우량 임차인이 들어오기에는 한계가 있어 임대료 수입이 크게 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성수전략정비구역 개발, 한강 건너 압구정 개발과 함께 성수동의 토지 가치 상승은 기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두 회사가 본업이 아닌 부동산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크래프톤과 무신사 모두 사내에 부동산전담팀을 운영하면서 성수동 일대 부동산을 개발하고 있다. 한 게임 업계 관계자는 “크래프톤 주가가 계속 내리막길인데 본업인 게임 개발보다 부동산 투자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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