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출신이 아니라, 의사를 겸직하고 있다는 것이 변호사로서 저만의 경쟁력입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의료계 사건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직에 있어야 한다는 게 제 지론입니다.”
정필승(변시 6회) 법무법인 우성 변호사는 11일 오후 서울경제와 만나 이 같은 소신을 밝혔다. 정 변호사는 ‘변의사(변호사+의사)’다. 2001년부터 의사생활을 시작한 그는 2017년 변호사가 됐다. 하루 중 절반은 의사로, 나머지 절반은 의료행정?의료손해배상을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로 일하는 이른바 ‘투잡러’다. 하나도 어렵다는 일명 ‘사짜’ 자격증을 두 개나 가진 그였지만 “인터뷰 때문에 옷도 차려 입었다”며 웃는 모습에서 겸손함이 뭍어나왔다.
정 변호사가 법조계로 뛰어들게 된 계기는 2003년 재판 당사자로 사법 시스템을 경험하면서다. 정 변호사는 “가까운 친척의 사건에 연루돼 참고인으로서 재판에 출석한 적이 있었다”며 “당시 내 진술이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는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진술이라는 이유로 배척됐고, 결국 유죄를 선고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처음에는 억울한 마음도 들었지만 대한민국의 사법시스템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커져 법조계에 발을 들였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의사로 재직해야만 알 수 있는 요소들을 짚어내 사건을 해결한 경험이 많다. 예컨대 최근 외국인 노동자가 병원을 돌아다니며 외국인등록정보를 기입하지 않고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받으면서, 처방한 의사로까지 수사가 확대된 사건을 맡았다. 정 변호사는 “의사가 진료실에서 보는 전자차트에는 접수된 환자의 등록정보가 기입됐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창구에서 접수가 된 외국인이었기에 진료기록을 바탕으로 처방할 수밖에 없는 구조임을 소명했고, 기소유예 판단을 받았다”고 밝혔다. 실제 의사로서 전자차트의 요소들을 알고 있었기에 해결이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의료계와 법조계를 넘나들며 전문성을 떨치고 있는 그이지만 최근 안타까운 사연을 경험하기도 했다. 80대 할머니가 무릎관절 치환수술을 받는 과정에서 패혈증으로 사망한 사건이었다. 환자에게 투약된 약물들을 검토하던 정 변호사는 치환수술에 쓰이지 않는 항생제가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정 변호사는 “패혈증이 아닌 항생제의 오용으로 인한 신부전증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전문의 의견서도 제출했지만 판사가 인정하지 않았다”며 “의료인으로서 해당 항생제를 사인으로 지목할 수 있겠지만, 법정에서 이를 입증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고 설명했다.
정 변호사에 따르면 의료소송은 일반인의 인식과 전문가의 관점의 괴리가 큰 분야 중 하나다. 일반인은 치료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할 경우 법적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지만, 사실 의료인이 치료에 최선을 다했을 경우에는 과실 혐의가 적용되지 않는다. 치료과정 자체가 성공을 100% 보장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반인이 문제점을 포착하고 지적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입증이 어렵다는 특징도 있다. 정 변호사는 “전문가로서 일반인이 억울해 하는 부분과는 다른 문제점을 포착할 때가 많다”며 “현직 의사로서 사건을 정확히 파악하고 문제점을 찾는 것에 제 특별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의료사건을 다루는 주변 변호사들을 자문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의료계와 법조계의 차이를 묻는 질문에 정 변호사는 “법조계는 결과만 강조되는 의료계와는 결이 다르다”며 “한 재판이 유사 재판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며“과정을 중요시하는 업무와 결과를 중요시하는 업무를 동시에 하다 보니 더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는 것 같다”고 했다.
국내 최고 의료전문 변호사 같은 거창한 미래를 꿈꿀 것 같지만 정 변호사의 꿈은 소박하기만 하다. “거창한 꿈은 없습니다. 그동안 모아둔 책들을 다 읽는 게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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