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배우 변희봉(본명 변인철)이 18일 향년 81세로 별세했다. 고인은 연극배우로 시작해 성우로 연예계에 데뷔한 이후 '제1공화국'(1981), '찬란한 여명(1995), '허준'(1999) 등 다수 드라마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특히 봉준호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2000)를 시작으로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 등에 출연해 '봉준호의 페르소나'라고 불리기도 했다. 유족에 따르면 고인은 과거 췌장암 완치 판정을 받았으나 최근 재발해 투병하던 끝에 이날 오전 세상을 떠났다.
◇ 췌장암 환자 증가세…국내 주요 암 발생률 8위
췌장암은 췌장에 생긴 암세포로 이뤄진 종괴(종양덩어리)다. 과거에는 비교적 드물게 발생하는 암으로 여겨졌으나 생활방식이 서구화되면서 환자수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췌장암 신규 환자는 8414명으로 국내 주요 암 중 갑상선암, 폐암, 대장암, 위암, 유방암, 전립선암, 간암에 이어 8번째로 많이 발생했다. 50세 이후에 주로 발생하는데, 특별한 초기 증상이 없어 초기에 발견하는 사례가 드물다.
췌장암의 가장 흔한 증상은 복통, 식욕부진, 체중감소, 황달 등이다. 췌장의 머리 부분(두부)에 암이 생기면 대부분 황달이 나타나는데 몸통(체부)과 꼬리 부분(미부)에 발생하는 암은 초기에 증상이 거의 없어 시간이 지나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상복부 불편감, 소화장애, 식욕부진, 오심(메스꺼움), 설사, 변비 등의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대부분 비특이적이고 막연한 위장관계 증세여서 과민성 대장염이나 기능성 위장장애로 오인되기 쉽다. 그 밖에 지방의 불완전한 소화로 인해 기름진 변의 양상을 보이는 지방변 또는 회색변 등이 나타날 수 있으며, 당뇨병이 새로 발생하거나 기존 당뇨병이 악화되고 췌장염의 임상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 조기 진단 어려운데 전이 쉬워…'침묵의 살인자'라 불려
췌장암은 '침묵의 살인자'로 불릴 정도로 예후가 불량하다.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췌장암 환자의 5년 상대생존율은 13.9%에 그쳤다. 췌장암 환자 10명 중 8명 이상이 5년 이내에 사망한다는 의미다. 전체 암생존율 70.7%와 비교해도 5분의 1 수준이다. 췌장암 진단을 받는 환자와 가족들은 좌절할 수 밖에 없다.
췌장암의 예후가 유독 나쁜 이유는 췌장의 해부학적 위치와도 밀접하게 관련된다. 췌장은 여러 장기들에 둘러싸인 채 복강의 후복벽 깊숙한 곳에 위치한다. 머리 부분은 십이지장과 연결돼 있고 췌장의 꼬리는 비장에 닿아 있다. 복겉에서 만져지지 않을 뿐 아니라, 개복해도 한눈에 들어오지 않다 보니 조기 진단이 그만큼 어렵다. 또 두께가 2cm정도로 얇고 피막만으로 쌓여 있는 데다 소장에 산소를 공급하는 상장간막 동맥과 장에서 흡수한 영양분을 간으로 운반하는 간문맥 등과 밀착되어 있어 암의 침윤이 쉽게 일어난다. 췌장 후면의 신경 다발과 임파선에도 조기에 전이가 발생하는데, 특히 췌장 암세포는 성장 속도가 빠르다.
체장암은 암세포가 췌장에만 있는 1기 또는 주위 조직이나 림프절 전이가 있는 2기에만 수술이 가능하다. 1, 2기는 전체 췌장암 환자의 30%에 불과하다고 알려졌다. 암이 상당히 진행된 3기와 간, 폐 등 멀리 떨어진 장기로 원격 전이가 일어난 4기 환자는 수술이 불가능하다.
◇ 45세 이후에 원인 모를 췌장염·당뇨병 생겼다면 검사 받아봐야
췌장암은 유전성 췌장염을 제외하면 위험군이 명확하게 설정되어 있지 않다. 다만 만성 췌장염이 있거나 췌장의 낭성 종양을 보유한 경우, 췌장암 가족력이 있는 경우 등은 췌장암 고위험군으로 간주된다. 담배는 폐암뿐 아니라 췌장암의 위험인자로 꼽힌다. 당뇨병은 일률적인 췌장암의 위험인자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게 학계의 견해다. 비만하지도 않고 가족력이 없는데 △중년 이후에 갑자기 당뇨병이 발생했거나 △기존 당뇨가 특별한 이유 없이 악화되는 경우 △고아밀라제혈증이 동반된 경우 △혈중 CA19-9가 많이 상승된 경우 △방사선학적 검사상 췌관 확장이 동반된 경우 등이 췌장 정밀검사를 받아봐야 할 요건이다. 45세 이후에 원인 미상의 췌장염이 발생했을 때도 췌장암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현재 췌장암의 진단을 위해서는 △복부 초음파 △복부 전산화 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내시경적 역행성 담췌관조영술(ERCP) △내시경 초음파(EUS) △양성자방출 단층촬영(PET) △혈청종양 표지자(CA19-9) 등이 사용된다.
복부 초음파 검사는 통증이 있거나 황달이 있는 환자에서 담석증을 감별하기 위해 일차적으로 시행한다. 초음파는 췌장 종양이나 담관 확장, 간 전이 등을 확인할 수 있고, 조영제를 사용할 필요가 없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검사자에 따라 정확도가 다르고, 비만 정도, 장내 공기 등에 의해 제약이 있다는 점은 한계로 지목된다.
복부 CT는 췌장암을 진단하거나 병기를 측정하는 데 초음파보다 유용하다. 검사자에 따른 오류가 적어 병변을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고 크기가 작은 암도 발견할 수 있다는 게 장점으로 꼽힌다. CT만으로 진단이 불확실한 경우 MRI가 추가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ERCP는 모든 경우에 시행하는 검사는 아니며, 황달이 있을 때 내시경적 담즙 배액술을 위해 주로 이용된다. 이 외에도 CT에서 애매한 경우이거나 십이지장과 유두부의 관찰이 필요한 경우, 췌액의 채취가 필요한 경우, 췌관 내 생검과세포진 검사가 필요한 경우에 선택적으로 시행될 수 있다.
최근에는 췌장 종양과 만성 췌장염을 구별하거나 2cm 이하의 작은 종양을 진단하거나 췌장암의 병기 등을 결정할 때 일반 초음파 검사나 CT보다 유용하다는 보고가 늘면서 내시경 초음파검사가 많이 시행된다. PET는 췌장암 세포에서 당 대사가 증가되어 있는 것을 이용한 검사 방법으로 췌장암과 췌장염의 감별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잠재 전이 병소를 발견하거나 수술 후 재발 판정 등에 이용할 수 있으나 가격이 비싸 제한적으로 이용된다. 췌장암과 관련되어 가장 흔히 사용되는 종양 표지자는 CA19-9이지만, 특이도가 낮다. 췌장암이 아닌 담도를 포함한 소화기계 암이나 담관염, 담도 폐색이 있는 경우에도 상승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조기암에서는 정상인 경우가 많아 췌장암의 예후와 치료 후 추적검사에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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