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들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에서 밝힌 대로 2025년까지 온실가스를 공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의문입니다.”
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컨설팅사 임원의 말이다. ISSB는 국제회계기준(IFRS) 재단의 산하 기구일 뿐인데 왜 이곳에서 제시한 기준에 따라 우리 스스로 온실가스 공시 데드라인을 내재화하는지 모르겠다는 뜻이다.
물론 ISSB는 지난해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의 지지를 받아 설립돼 ‘ESG 국제 표준’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ISSB가 우리 법을 좌우할 강제력을 지닌 것은 아니다. “꼭 ISSB가 시키는 대로 따라갈 필요는 없다”는 이 임원의 주장은 참고할 만하다.
탄소 중립의 당위를 벗기면 온실가스 공시는 유럽연합(EU) 등 서구권이 통상에서 비교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만든 지렛대 같은 측면이 있다. 가령 EU는 이미 2010년대부터 ‘비재무정보 공개 지침’ 등으로 온실가스 책정 노하우를 축적했다. EU가 탄소국경조정제도 등의 통상 규제를 서둘러 낼 수 있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자리한다.
한국 산업계는 이런 움직임이 달갑지 않다. 우리나라는 제조업 무역으로 먹고 산다. 온실가스 측정을 고심하기 시작한 기간도 얼마 되지 않는다. 반면 해외 ESG 제도를 보면 공급망에서 발생한 ‘간접 배출량’까지 계산하기를 요구한다. 원·하청 수직 계열화가 강한 우리나라 제조업에서는 배출량 계산 난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기업이나 정부 모두 ‘배출량을 어떻게 측정하느냐’며 골머리를 앓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지만 넋 놓고 있을 수 없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난도는 높은데 납기(2025년)는 빡빡해 보이니 당사자인 기업과 내부 기준을 마련해야 하는 관료를 막론하고 하소연이 쏟아진다.
안타까운 대목은 우리가 보다 능동적으로 이 문제에 대응할 필요성이 있음에도 서구권 기준에만 집착하고 있는 점이다. 소규모 개방 경제인 우리에게 단기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는 탄소 중립 규제이기에 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탄소 중립이라는 새 조류에서 무작정 미국·유럽 기준을 추종하기보다 우리 목소리가 관련 규제에 반영될 수 있도록 어필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아직 미래가 확실하지 않기에 미래를 변화 시킬 힘도 우리 내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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