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당국의 인증을 통과할 때까지 구체적으로 자본이 얼마나 투입되어야 합니까.” (프리티 유세프 노르웨스트 벤처 파트너스 파트너)
19일(현지 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모스콘 센터 웨스트홀에서 진행된 실리콘밸리 최대 스타트업 페스티벌인 테크크런치 디스럽트 2023. 미리 선정된 200개 스타트업 중 최고의 스타트업을 가리는 ‘스타트업 배틀필드 200’이 시작되자 심사를 맡은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프랑스 기반 수직이착륙기(eVTOL) 기업 비욘드 에어로(Beyond Aero)의 일로아 귈로틴 창업자가 무대에 올랐다. 이 업체는 수소 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85㎾ 추진 시스템을 테스트하고 있으며, 상업용 제트기인 ‘비욘드에어로 원’ 출시를 계획 중이다. 귈로틴 창업자는 “수소 기반으로 추진 시스템으로 차별화해 통근용 제트기까지 라인업을 확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6분 간의 발표를 마치고 나자 심사위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과금 체계는 어떻게 나뉘어 있는가’ ‘고객 유형은 어떻게 분류하고 이에 따라 가격 모델을 책정하고 있는가’ ‘상용화 로드맵을 위해 규제 기관과의 협력이 어디까지 진행되고 있는가’ 등이었다. 막힘없이 대답하던 귈로틴 창업자는 “상용화까지 얼마나 많은 자본이 투입돼야 할 지 구체적으로 가늠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잠시 머뭇거리기도 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스타트업 시장을 휩쓴 침체기 여파로 벤처캐피털(VC)들이 깐깐해지고 있다는 것을 단번에 체감할 수 있는 풍경이다. 팬데믹 이전부터 4회째 디스럽트에 참가한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이전에는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창업 멤버, 성장 속도 등에 질문이 집중됐다면 이제는 그것으로는 충분치 않다”며 “얼마나 돈을 벌고 있는지 그렇지 않다면 수익화 시점까지의 납득 가능한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고 짚었다.
흐려지는 투자-자선 경계… ‘샤크’도, 잡스 아들도 나섰다
투자자들은 수익성 높은 스타트업들을 찾아내는 동시에 가능성 있는 자선 활동(Philanthropy)에도 나서는 모습이었다. 기술투자와 경계가 흐려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미국프로농구(NBA)의 전설로 꼽히는 샤킬 오닐은 이날 투자자이자 자선사업가(Philanthropist)로서 테크크런치 디스럽트 무대에 섰다. 오닐은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하는 아이들의 독서, 학습, 소통 플랫폼 기업 에드소마(Edsoma)의 리드 투자자로 참여했다. AI 독서 교사가 아이들의 독서를 돕는데, 무료 버전으로는 아이 당 최대 세 권까지 읽을 수 있으며 월 구독료 9.99달러면 네 명의 어린이들이 함께 무제한의 책을 읽을 수 있다. 이 기업은 시드 투자로만 250만 달러(약 33억원)를 유치하며 화제를 모았다.
오닐은 에드소마에 투자를 결정하게 된 계기에 대해 질문을 받자 “창업자인 카일 월그렌은 나에게 돈을 요구하지 않았다”며 “그는 나더러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오닐은 “감옥의 죄수에게 독서를 전파하면 범죄 재발 가능성이 87%에서 18%까지 낮아진다”며 “교육기술은 사람들의 삶을 바꿀 것이고 나는 내가 가진 부를 이 같은 프로젝트를 더 많이 발굴하는 데 쓸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으로 무대에 선 이는 고(故)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의 아들인 리드 잡스였다. 그는 암을 정복하기 위한 투자 법인인 ‘요세미티’를 최근 설립하고 2억 달러(약 2660억원)의 자금을 확보했다. 주요 기관 투자자들은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 등이 있다.
그가 암 치료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아버지 스티브 잡스의 투병과 죽음에서 시작됐다. 그는 “열두살 때 아버지가 처음 췌장암 진단을 받았고 스탠퍼드대에 재학 중이던 시절 돌아가시게 되면서 종양학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며 “진정으로 관심을 갖는 건 요세미티에서 하는 일들로 일생 동안 암이 더 이상 개개인에게 치명적인 문제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전통적인 벤처 펀드를 운영하면서도 전체 펀드의 2.5%는 비영리법인에 투자하고 있다. 잡스는 “연구자들에게 투자할 때도 다른 VC들과 달리 연구자들이 직접 지적재산권(IP)을 보유하게 한다”며 더 많은 투자자들이 이 같은 방식을 벤치마킹 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한국 스타트업들도 고객·수익 확보 나서 눈길
이날 테크크런치 디스럽트 2023의 플래티넘 스폰서로 참여한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꾸린 한국관에 15개 스타트업도 부스를 차렸다. 인공지능(AI) 기업 중에는 수익 모델과 고객사들을 확보한 곳들도 상당수 있었다.
이날 참가한 기업 중 AI를 이용한 공간 정보 기업 다비오는 이미 글로벌 위성기업인 막사 테크놀로지, 프랑스 에어버스 등과 협업하면서 비즈니스 스케일을 키우고 있다. 고객사도 다수 확보한 상태다. AI경량화 기술 강자인 노타AI도 영국의 칩 설계 기업 ARM을 비롯해 다양한 글로벌 기업들과 협업하고 있다. AI를 활용해 반려동물의 코를 일종의 ‘지문’처럼 활용해 해당 서비스를 펫 보험사에 제공하는 기업 펫나우 등도 눈에 띄었다.
이외에도 1인 크리에이터, 프리랜서 등을 대상으로 마케팅·브랜딩 플랫폼 씨야도 수천여명의 활성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다. 박기상 씨야 대표는 “커리어 기반 소셜미디어 링크드인에서 일한 경험을 토대로 1인 크리에이터를 위한 링크드인을 만들었다”며 “이용자들이 연결되는 것만으로도 서로를 홍보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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