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기후변화에 대한 '실용적 접근'을 강조하며 녹색 정책 이행 시기를 대폭 늦추기로 했다. 총선을 앞두고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생활고가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내린 결정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정부의 갑작스러운 속도 조절에 환경단체와 야당은 물론 산업계에서도 비판이 나온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20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열고 휘발유·경유차 신차 판매 금지 시기를 종전의 2030년에서 5년 미룬다고 발표했다. 다만 중고차 거래는 2035년 이후에도 가능하다.
또 수낵 총리는 주택 가스보일러를 히트펌프로 전환하는 계획도 완화하겠다며 "취약가구가 보일러를 (강제적으로) 바꾸지 않아도 되도록 새로운 면제 제도를 도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결정은 이전 정부들이 기후변화 대응 정책 달성 시점을 너무 이르게 잡아놨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수낵 총리는 "이념이 아닌 실용주의를 택한 것"이라며 "이 속도로 계속 간다면 국민들의 지지를 잃을 위험이 있으며, 반발로 인해 기후변화 목표 자체를 이루기도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035년이라는 휘발유·경유차 신차 퇴출 시기가 유럽연합(EU) 및 미국 일부 주와 동일하다고도 덧붙였다. 영국이 계획 이행 시기를 늦추더라도 기후변화 대응 수준이 주변국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실제로 영국은 '2050년 탄소중립' 목표에 주요국 중 처음으로 법적 구속력을 부여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변화에 각계각층에서 비판이 나오고 있다. 수낵 총리의 기자회견은 전날 관련 내용이 언론을 통해 먼저 보도되면서 이날 급하게 개최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야당인 노동당은 "전기차 관련 비용이 저렴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휘발유·경유차 퇴출 날짜를 미루면 오히려 가계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하며 총선에서 승리할 경우 2030년 퇴출 규정을 복원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영국 정부의 정책을 믿고 사업 계획을 짠 일부 자동차 업체들이 불만을 노골적으로 토로하는 모습이다. 포드사의 영국 대표는 "우리는 영국 정부에게 야망, 약속, 지속성 세 가지를 원하는데 이번 조치는 이를 모두 훼손한다"고 지적했다. 르노와 폭스바겐 임원 출신인 이안 플러머도 FT에 "이번 정책 변화는 명확성과 일관성을 요구하는 제조업체들에게 엄청난 골칫거리가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영국 정부의 정책 수정이 '표심'을 고려한 정치적 결정이라는 해석도 있다. 내년 총선이 예상되는 가운데 야당인 노동당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15~20%포인트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자 정부가 가계의 부담을 경감하는 대책을 들고 나왔다는 것이다. 로이터통신은 "수낵 총리는 일부 녹색 정책을 축소하는 것이 고집스러운 인플레이션과 경기 둔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유권자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방안이라고 판단한 듯하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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