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은 지난 2013년 중국의 최고 권력자 자리를 차지한 후 10년째 “중국몽”과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외치고 있다. 한국 등 해외 언론들은 이를 받아 중국이 어떻게 발전하고 있고 무엇이 되려고 하는지 분석하는데 여념이 없다. 다만 ‘중국’이나 ‘중화’가 무엇인지, 중국에서 ‘민족’은 어떤 의미인지, 중화민족의 ‘부흥’의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신간 ‘중국이 말하지 않는 중국 : 현대 중국 탄생에 숨겨진 빛과 그림자(원제 The invention of China)’는 현재 중국 공산당 정권이 국수주의와 패권주의의 기반으로 삼고 있는 ‘중국’이라는 개념이 100여년 전에 만들어진 신화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영국 BBC 기자 출신으로 남중국해 등 다양한 국제 문제를 취재했고 특히 중국에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글을 써왔다.
저자에 따르면 ‘중국’이라는 개념은 19세기말 이후 만주족 왕조의 멸망과 한족 공화국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국호에 대한 고민에서 나왔다. 전통 중국은 자신을 중심에 둔 위계적 질서를 일컫는 ‘천하’라는 개념일 뿐 현재와 같은 보편 국가가 아니었다. ‘중국’이라는 용례가 역사적으로 사용됐지만 이는 ‘중심 국가’나 ‘세계의 중심’ 등 번역에 가까웠다. 청나라 시기 방문한 유럽 선교사들이 중국인에게서 자국을 호칭하는 일반명사가 없다는데 놀라기도 했다. 당시 공식 명칭은 ‘대청국’이었다.
중국은 오히려 외국인들이 ‘차이나(China)’라고 부른 개념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왔다. 황쭌셴이나 량치차오, 캉유웨이, 장빙린, 쑨원 등 한족 개혁파와 혁명가들은 근대 국가로서 새로운 국호를 고민했다.
당시 후보로는 중국(中國), 중화(中華), 화하(華夏), 대하(大夏), 제하(諸夏) 등이 있었다. 결국 ‘중국’과 ‘중화’가 선택됐다. 현재 중국·대만의 공식 명칭은 각각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이다.
역사상 ‘중국’이 없다는 것은 ‘중국인’이나 ‘중국 민족’이 없었다는 이야기도 된다. ‘한족’이라는 개념 역시 100년 전에 발명됐다. 한족들 스스로는 주변 이민족과 구별해 자신을 ‘화인’이나 ‘화하인’이라고 불렀다. 물론 이는 종족적 개념이 아닌 문화적 표현에 가까웠다. ‘한족’이나 ‘한인’이라는 명칭은 오히려 몽골족이나 만주족 등 중국을 정복한 북방 민족들이 사용했다고 한다.
한족은 아편전쟁·청일전쟁 등 서양·일본 제국주의 세력과 대립하고 또 1911년 신해혁명 전후에서 만주족을 배척하는 과정에서 ‘한족 민족주의’를 발전시켜 나갔다. 한족 사상의 대표적인 사상가는 장빙린이다. 장제스의 국민당과 마오쩌둥의 공산당이 경쟁하면서 이러한 경향이 더 강화됐다.
그리고 한족은 전설상의 ‘황제 헌원의 자손’이라는 신화가 만들어졌다. 더 나아가 1980년대 이후에는 한발 더 나아가 중국내 모든 민족들이 하나의 민족이라는 이른바 ‘중화 민족주의’가 페이샤오퉁에 의해 주장된다. 그리고 몽골 왕조나 만주 왕조의 최전성기 영토와 국력이 ‘중화 민족의 부흥’ 목표가 됐다.
최근 국제적인 긴장을 고조시키는 대만과 남중국해 분쟁도 마찬가지로 100여 년 전에서야 시작됐다. 19세기까지 대만과 남중국해 섬들은 ‘중국’의 관심이 아니었다. 대만은 심정적으로 먼나라였고 남중국해 섬들의 존재도 20세기 초에 들어서야 인식됐다. 중국의 영토분쟁은 현대 중국의 세력 확장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저자는 “중국에 대해 ‘5000년의 우월한 문명’이니 ‘한족의 단결’이니 이러한 개념이 어디서 왔는지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즐겁게 말을 따라 하는 평론가들이 너무 많다”며 “이들은 중국 민족주의에 무임승차권을 주고 있다. 이는 세계에 대한 위협이 된다”고 말한다. 2만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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