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와 산업의 중심인 반도체 산업이 위기다. 메모리 반도체 부문에서는 그나마 선방하고 있지만 업황이 좋지 않고, 미래 산업의 필수 요소인 시스템 반도체 부문에서는 대만의 TSMC에게 크게 밀리고 있다. 인력은 부족하고, 기술 확보도 쉽지 않은 상태다.
팹리스 분야에서는 파운드리보다 더 크게 뒤처지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에서 세계적인 팹리스 업체를 찾기 어렵다. 퀄컴과 엔비디아, 브로드컴과 AMD 등 글로벌 팹리스 업체들에 비하면 너무나도 초라한 것이 국내 팹리스의 현실이다. 파운드리에서 대만의 TSMC에 밀린다면 팹리스에서는 대만의 미디어텍에게 밀린다.
28년 간 인텔·삼성전자 등에서 반도체 업계에 헌신해 온 ‘반도체 열전’의 저자는 “반도체 전쟁 하에서 대기업·정치인들이 더욱 절실해지지 않는다면 끝내 반도체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마저 모두 잃게 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저자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선 우리나라의 반도체 역사를 살펴봐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30대에 미국 인텔의 시스템반도체 플랫폼 부서장을 역임한 저자는 실리콘밸리 방식의 업무 문화를 도입하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처음 인텔에서 조직 전체를 조망할 때는 무척 낯설었다”라며 “일은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문제 의식이 생겼고, 한국 기업으로 돌아오게 하는 계기가 됐다”고 회고한다. 그는 또 “경쟁과 제휴를 넘나들 줄 아는 실리콘밸리의 오픈 마인드가 필요하다”고도 조언한다. 강력한 보안 때문에 폐쇄적인 국내 반도체 업계의 특성은 오히려 업계의 발전을 가로막는다.
반도체 산업이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산업인 만큼 정부와 정치인들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책은 정부의 역할을 ‘추진자이면서도 조력자’로 규정한다. 책은 “정부는 정책 가치의 방향은 주도해야 하지만 그 구체적 실행에 있어서는 철저히 조력자의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며 “정답 제시보다는 오답을 지워나가는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기업과 정부의 이러한 노력을 통해 우리는 ‘건전한 반도체 생태계’ 조성에 성공해야만 한다. 생태계 조성과 함께 그는 6만 명 규모의 팹리스 인재도 양성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대기업 위주의 시장 구조일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소 팹리스나 디자인하우스를 위한 시스템도 구축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금 유통을 위해 반도체 전문 모태펀드의 중요성도 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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