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을 쓰고 도포 자락을 휘날리는 예수, 한복 치마저고리 차림의 성모 마리아, 선녀를 닮은 가브리엘 천사, 조선 문관 복장의 동방박사,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들, 민화 속 도깨비를 떠올리게 하는 사탄, 한양도성 모양의 예루살렘….
운보 김기창 화백(1914~2001)이 지난 1952~1953년 그린 예수의 생애 연작 30점 속의 예수 그리스도와 주변 인물의 모습이다. 예수를 선비의 모습으로 그린 것이 다른 성화 작품과 다른 특징이다. 책은 예수의 탄생에서, 세례, 수난, 죽음, 부활 등 일련의 사건을 한국 풍속화 방식으로 표현했다. 지금 봐도 파격적이면서 현대적이다.
이 30점 그림들이 70년 만에 소강석 새에덴교회 담임목사의 해설과 함께 ‘예수의 생애 성화집’이라는 이름의 책으로 묶여 출간됐다. 소 목사는 책 서문에서 “운보 김기창 화백을 통해 한국 기독교는 우리만의 문화와 사유의 방식으로 복음을 좀 더 폭넓게 이해하기 시작했고 예술적 토착화를 이루어냈다”고 밝혔다. 그는 또 “그의 그림 하나하나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깊은 사랑의 서정과 사유의 미가 담겨 있다”고 평가했다.
김 화백은 한국전쟁 중 전북 군산에서 피난생활을 하다가 친분이 있는 미국 앤더스 젠센 선교사의 권유로 이들 성화 연작을 그렸다. 한국 근대 대표 화가인 그는 만 원짜리 지폐 속 세종대왕의 초상을 그린 사람이다. 7살에 후천적 청각장애인이 된 그는 독실한 신앙과 예술 활동을 통해 위안을 찾았다고 전해진다. 일제강점기 시절 친일논란은 부정적 이미지다. 2001년 정부로부터 최고등급인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책 속의 인물들은 전통 복장을 갖췄고 집들은 한옥이다. 산천의 배경도 한국의 그것 그대로다. 기독교인 아닌 일반인이 보기에는 조선 관리들이 예수를 해코지 하는 것도 너무 생생하다. 이는 조선 말 기독교 박해를 떠올리게 한다.
성화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돕도록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대표회장을 지낸 소강석 목사의 성경 배경 이야기와 그림 해설이 김기창 화백의 그림과 나란히 실려 있다. 소 목사는 전북 출생으로 군산제일고를 졸업한 인연이 있다.
이와 함께 이영훈 한교총 대표회장 겸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 장종현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백석) 총회장, 오정현 사랑의교회 담임목사, 김의식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통합) 겸 치유하는교회 담임목사 등의 추천사가 실렸다. 책은 기독교서점에서 구입 가능하다. 15만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