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부도가 잇따르는 중소건설사들의 자금 리스크가 신탁사로까지 번지고 있다. 자재 수급 등 여파로 공사기간이 지연되면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채무와 늘어난 공사비 등을 감당하지 못한 건설사들이 잇따라 시공을 포기하자 책임준공형 토지신탁 계약을 맺은 신탁사가 이를 떠안고 있는 것이다.
2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한국토지신탁의 신탁계정대는 지난해 말 5514억 원에서 올해 6월 7154억 원으로 30% 늘었다. 한국자산신탁 역시 같은 기간 2240억 원에서 3690억 원으로 65% 급증했다. 신탁사들의 계정대는 시행사가 신탁사에게 개발 사업을 위해 빌린 돈이다. 책임준공형 관리형 개발 신탁 계약에 따라 시공사(건설사)가 공사비 부족 등으로 사업을 포기할 경우 신탁사가 자체 계정에서 자금을 투입해 공사를 진행하는데 이같은 사례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대부분 시공사가 책임준공을 확약한 지식산업센터나 물류센터 등 비(非)주택 사업장에서 사고가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한 자산신탁은 올해 상반기에만 강서구 마곡동 지식산업센터 등 사업장 3곳에 신탁계정대 약 430억 원을 투입했다. 또 다른 신탁사는 계약을 맺은 대우조선해양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하도급 공사대금 등으로 약 190억 원의 신탁계정대가 발생했다. 오지민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2022년 이후 책임준공형 토지신탁 사업장에 참여한 시공사가 부도·파산 선고를 받거나 건자재 조달 차질 및 인건비 상승 등으로 공정이 지연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시공사의 신용도가 낮은 사업장 비중이 높은 가운데 자재비와 금리 상승, 미분양 위험으로 우발채무 현실화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우려했다.
대부분 부동산 개발 현장에서는 건설사 책임준공만료일로부터 6개월 이후 신탁사책임준공만료일이 도래한다. 공사 기간이 도과하면 1차적으로 시공을 맡은 건설사들이 채무를 인수한다. 그러나 유동성이 고갈된 건설사들이 시공을 포기하면서 신탁사로 위험이 전이되고 있다. 상반기 부도가 발생한 대우조선해양건설과 대창기업, 에이치엔아이엔씨, 신일 등도 PF 보증 사업장이 많아 자금난으로 흑자 도산한 사례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건설사 PF 보증 규모는 작년 말 대비 1조7000억 원 증가한 27조7000억 원으로 나타났다. 건설사가 쓰러지면서 전가되는 PF채무는 물론 공사가 지연돼 발생하는 금융비용과 하도급 비용까지 모두 신탁사 몫이다.
건설사들에게 과중한 리스크를 부과하는 책임준공확약을 손질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주택과 달리 지식산업센터나 물류센터 등 비주택 사업장은 분양대금 유입이 없기 때문에 늘어난 공사비를 시공사가 오롯이 부담한다. 여기에 책임준공 기한까지 빠듯하다. 급등한 공사비를 추가 부담하면서 책임감 있게 공사를 이어가도 기한에 맞추지 못하면 몇 백, 많게는 몇 천 억 원 단위의 PF채무를 시공사가 떠안아야 한다. 책임준공에 걸린 채무인수 계약 때문이다. 주택의 경우 분양률을 달성하지 못할 시 15% 내외의 할인분양 수수료와 5% 안팎의 트리거 수수료도 시공사가 부담한다. 분양대금 회수가 어려워지고 대주단 수수료까지 시공사가 지불하는 가운데 공사비까지 급격하게 오르는 '이중고'를 겪는 셈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