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용 절감을 우선해 정체됐던 지난 30년의 ‘냉온(冷溫) 경제’에서 투자와 임금 인상이 활발한 ‘적온(適溫) 경제’로 전환을 꾀하기 위해서는 지금이 기회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일본 경제를 성장 궤도로 돌려놓기 위한 변혁의 닻을 올렸다. 일본 정부가 10월 발표할 새로운 경제 대책은 향후 3년을 골든타임으로 ‘투자→고용·임금→소비’로 연결되는 성장 선순환 고리를 완성하기 위한 지원책을 총동원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반도체·배터리·바이오 등 전략산업의 국내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세제 혜택과 보조금 지급이 골자를 이룬다. 아울러 임금 인상의 효과를 반감하는 사회보험제도를 손질하고 고(高)물가 기조에도 가계 소비와 투자가 위축되지 않도록 뒷받침해 이번에야말로 저성장 굴레에서 완전히 탈피하겠다는 전략이다.
26일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가 전날 발표한 새로운 경제 대책의 5대 중심축은 △고물가 대책 △임금 인상 지원 △국내 투자 촉진 △인구 감소 대책 △국민 안전·안심 강화 등으로 구성된다. 일본 정부는 구체적인 내용을 이번 주 내로 확정하고 다음 달 중으로 대책을 실시할 예정이다.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성장 선순환 고리의 출발점인 기업들의 국내 투자 촉진이다. 일본 기업들은 오랜 침체 기간 설비투자·연구개발·임금 등 비용을 최소화해 이익을 확보해왔는데 이러한 방식이 경제 체질을 악화시킨 주범으로 꼽혔다. 이에 일본 정부는 반도체·배터리 등 전략 분야를 대상으로 초기 투자부터 5~10년 단위로 생산·판매까지 장기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안을 담는다. 이밖에 연구개발 촉진을 위해 특허 등 지식재산권 소득에 대해 감세하고 인재 확보를 돕기 위해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을 외부 인력에 부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이를 통해 그간 위축됐던 기업들의 설비·기술 투자를 이끌어내고 첨단산업 공급망 재구축도 꾀한다.
투자 활성화를 통해 기업 체질 및 실적을 개선하고 고용과 임금 상승으로 연결한다. 일본 정부는 생산성 향상과 관련한 기업용 세제 지원의 조건으로 지속적인 임금 인상을 명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중소기업이 직원의 임금 총액을 전년 대비 1.5% 이상 늘릴 경우 증가한 급여의 15%만큼을 법인세에서 빼주는 제도를 시행 중인데 이 역시 최대 6년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세액공제를 받지 못하는 적자 기업을 고려해 이월 공제가 가능하도록 할 방침이다. 비정규직 인력난과 노동 생산성 저하의 원인으로 지적돼온 ‘연수(年收)의 벽’에도 대응한다. 연수의 벽은 일정한 소득이 있는 배우자를 둔 노동자가 사회보험료 징수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적은 시간을 일하는 현상이다. 일본에서는 종업원 101명 이상의 업체에서 연봉이 106만 엔(약 960만 원), 100명 이하 업체에서 130만 엔 이상인 노동자는 사회보험료로 인해 실수입이 오히려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에 일본 정부는 101명 이상 업체를 대상으로 직원의 사회보험료를 부담할 경우 1명당 최대 50만 엔의 보조금을 지급한다. 100명 이하 업체에서 연봉이 130만 엔 이상인 노동자에 대해서는 2년간 사회보험료를 부담하지 않도록 할 방침이다.
향상된 가계소득이 소비와 투자 확대로 제대로 이어지도록 물가 부담 완화에도 나선다. 먼저 고물가 지속에 휘발유 및 전기·가스요금에 대한 보조금 지급 제도의 시한을 연장한다. 요미우리신문은 “에너지 보조금 제도가 내년까지 연장될지가 관전 포인트”라고 전했다. 일본 소비자물가(CPI)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급등과 엔저 지속의 영향으로 지난해 9월부터 12개월 연속 3% 이상 상승했다. 8월 신선 제품을 제외한 근원 CPI 상승률은 3.1%를 기록했는데 앞서 정부가 에너지 보조에 나선 영향으로 상승세가 완화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다만 새로운 경제 대책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추가경정예산이 불가피해 재정 악화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기시다 내각은 다음 달 경제 대책을 발표하고 신속히 추경안을 제출할 방침을 밝혔다. 일본은 2020년 73조 엔, 2021년 36조 엔, 지난해 31조 엔 규모로 추경 예산을 계속 편성해왔다. 아사히신문은 “야당에서는 예산의 낭비를 막기 위해 추경을 진정으로 필요한 곳에 집중해 활용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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