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가계와 기업의 부채가 국가 경제 규모의 2.26배 수준으로 늘어났다. 26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2분기 말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 신용 비율은 225.7%로 집계됐다. 1분기 말에 비해 1.2%포인트 높아진 것으로 역대 최고치다. 특히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에 가계 대출이 늘면서 가계 신용 비율은 101.7%로 상승했다. 이는 선진국(73.4%)보다 크게 높은 수준이다. 기업 신용 비율은 124.1%로 전 분기 대비 1.1%포인트 뛰었으며 한계 기업은 3903개로 전체 기업(외부 감사 대상 비금융 법인)의 15.5%에 달했다.
선진국들은 글로벌 금융 위기 등을 거치며 민간 부문의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에 나선 반면 우리는 그런 고통스러운 과정을 건너뛰었다. 위기가 닥칠 때마다 정부와 중앙은행은 진통제를 놓듯 유동성을 공급하고 가계는 부동산에 투자하거나 소비를 늘렸다. 부실 기업은 퇴출되지 못하고 정부의 유동성에 의존해 생명을 연장해왔다. 앞으로 빚 부담은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최근 기업경기실사지수(BSI)와 소비자심리지수(CCSI)가 일제히 하락하는 등 경기 비관론은 더 커졌다. 수출 부진과 유가 상승에 더해 높은 빚 부담으로 소비와 투자 여력이 줄어든 탓으로 풀이된다. 과도한 빚이 경제에 부담을 주고 그로 인해 또 빚이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대출 규제를 강화하고 옥석 가리기로 부실 기업을 퇴출시키는 등 가계와 기업의 빚을 촘촘히 관리해야 한다. 부채 급증이 금융 시스템 불안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리스크를 관리해야 할 것이다. 한은은 가계 부채 관리를 위한 정책적 노력이 없을 경우 현재 1862조 8000억 원인 가계 부채 규모가 2년 뒤 2092조 원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부는 GDP 증가율보다 부채 증가율을 더 낮게 관리해 장기적으로 빚 부담을 줄이겠다는 입장이지만 실현하기 어려운 정책이다. 빚 폭탄의 뇌관을 제거하지 않고 이대로 놓아두면 경기 회복의 길은 더 요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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