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가 셧다운(업무 일시 중단) 데드라인을 불과 이틀 남겨두고 정부 예산안 처리가 난항을 겪고 있다. 임시 예산안마저 하원에서 부결된 가운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연일 하원에 예산안에 합의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29일(현지 시간) 버지니아주 포트마이어에서 열린 합참의장 이취임식에서 “하원이 가장 기본적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내일까지 정부 예산을 처리하지 못하면 우리는 우리 군인들의 기대를 저버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셧다운 기간에도 군인들이 여전히 전 세계에서 임무를 수행하겠지만 급여를 받지 못하게 될 것이라며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어 “우리 군인들이 우리를 보호하는 데 정치 놀이를 하면 안 된다. 완전한 직무 유기다”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공화당 소속 토미 튜버빌 상원의원이 국방부의 낙태 지원 정책 폐기를 요구하며 300명이 넘는 군 장성 인사 인준을 막는 상황에 대해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튜버빌 의원의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으면서 “상원의원 한명의 정치 의제와 나머지 47명(공화 상원의원)의 침묵이 군인들의 진급, 경력, 가족과 미래를 인질로 잡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날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하원 공화당을 이끄는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이 주도한 임시 예산안이 하원 본회의에 상정됐지만 찬성 198표 대 반대 232표로 결국 부결됐다. 하원 의석은 공화당 222석, 민주당 212석으로 공화당 자력으로 처리가 가능하지만 공화당 내 강경파 21명이 반대표를 행사해 발목을 잡았다.
매카시 의장은 강경파를 설득하기 위해 국방, 보훈, 국토 안보, 재난 구호 등 일부 기능을 제외한 정부 지출을 약 30% 삭감하고 국경 통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예산안을 마련했지만 강경파는 충분하지 않다며 반대했다. 하원 민주당도 예산안이 바이든 대통령과 매카시 의장이 5월 합의한 지출 총액보다 정부 예산을 더 줄여 각종 복지 프로그램을 삭감했다는 이유로 전원 반대표를 던졌다. 전체 예산안 합의에 필요한 협상 시간을 벌기 위해 10월 한 달간 정부 운영에 필요한 예산을 담은 임시 예산안마저 부결되면서 10월 1일 정부 셧다운이 거의 확실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골수 지지자인 맷 게이츠 하원의원(플로리다·공화)이 정부 예산안 통과를 막고 있는 공화당 내 강경파의 핵심 인물로 꼽힌다. 게이츠 의원은 같은 친(親)트럼프 성향인 매카시 의장과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워왔다. 게이츠 의원은 1월 하원의장 선거에서 14차 투표 때까지 매카시를 지지하지 않았다. 결국 매카시의 부탁을 받고 15차에서는 투표를 보류해 선출 정족수를 낮춤으로써 매카시 의장이 간신히 의장직에 올랐다. 게이츠는 최근 CNN과 인터뷰에서도 “매카시 의장이 탄핵 사태를 맞이할지 여부는 순전히 그의 손에 달려있다”며 예산안과 관련해 강경파의 요구를 받아들이라고 압박한 바 있다.
변호사 자격증을 보유한 게이츠 의원은 플로리다의 주(州) 상원의원을 지낸 부친의 뒤를 이어 정계에 뛰어들었다. 41세(1982년생)로 전국 단위 정치인치고는 젊은 나이에도 2010∼2016년 플로리다주 주 하원의원을 거쳐 2017년부터 연방 하원의원(4선)으로 재임 중이며 당내 강경 우파 성향 의원 그룹의 리더 역할을 맡고 있다. '자유주의 포퓰리스트'를 자처하는 그는 2016년 처음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했을 때 “무슬림 테러리스트를 죽이고 국경 장벽을 건설할 것”이라는 등의 과격한 공약으로 주목받았다.
10월 1일 0시 이후 셧다운이 시작되면 필수 업무를 하는 공무원은 무급으로 일하고 나머지 공무원은 무급 휴직에 들어가면서 정부 기능이 일부 정지된다. 현역 군인 130만 명은 무급으로 복무하며 재외공관 등 국가 안보 관련 기관도 계속 운영한다. 항공 운항에 필요한 관제사와 공항 보안 검색 직원 등도 무급으로 일하지만 셧다운이 장기화하면 운항에 차질이 예상된다. 샬란다 영 백악관 예산관리국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셧다운으로 국내총생산(GDP)이 260억 달러(약 35조 원)에 달하는 0.1∼0.2% 감소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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