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간도는 무자비한 땅이었다. 마적과 일본군이 별안간 들이닥치며 목숨을 강탈하곤 했던 시대. 식민지의 설움을 피해 그 땅에서 삶을 이어 나가고자 꿋꿋이 떠난 조선인들이 있었다. 일본의 돈, 중국의 땅, 조선의 사람들이 모여 형성된 무법지대에서 한 남자는 다짐한다. 이제는 이 총과 이 칼로 나의 식구들을 지켜낼 것이라고. ‘도적’은 그렇게 탄생했다.
지난달 22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도적’은 1920년대 웨스턴 활극을 표방하는 시대극 드라마다. 일본군에 속해 동포들의 목숨을 잃게 한 과거를 후회하던 ‘이윤(김남길 분)’이 간도로 와 조선인을 지키기 위한 도적단을 만드는 데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많은 작품들과 달리, 실존인물을 추정케 하는 단서는 없다. 인물들은 자유롭게 총을 쏘면서 들판을 달린다. 갑작스러운 모래 폭풍을 맞아 시야가 차단되고, 미국의 서부극처럼 결투가 열리기도 한다.
이윤을 연기한 김남길도 이 점에서 신선함을 느꼈다고 했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진행한 그는 “1920년대 배경을 가지고 웨스턴 장르를 표방하는 게 신선했다”면서 “특별한 사건을 모티브로 삼지 말고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판타지적 요소를 반영해서 있었을 법한 소재를 만들고 싶었다”고 전했다.
호쾌한 액션은 드라마의 장점 중 하나다. 도적단이 한 데 모여 펼치는 액션은 총과 활, 도끼가 모여 경쾌한 타격감을 선사한다. ‘도적’에는 롱테이크 액션이 많다. 김남길은 “롱테이크 장면으로 찍으면 쉽게 지치지만 지치는 것 또한 자연스러움으로 표현하자고 생각했다”면서 “편법으로 숨을 수 없다는 부담도 있었지만 그래서 새로운 롱테이크 액션을 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총을 자유자재로 이용하는 이윤을 연기하면서 배우의 부담도 클 수밖에 없었다. 당시 총의 고증을 지키기 위해 총알 개수를 일일이 셌고, 손가락으로 윈체스터 총을 돌리면서는 실핏줄이 터지는 고통을 겪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김남길은 “(액션에) 글로벌하게 보여줄 만한 묘미도 있고 자신감도 있다”고 전했다.
의리로 뭉친 집단이 속 시원한 액션을 선보이는 영웅물을 기대하는 시청자는 만족감을 드러낼 만하다. 한편으로 ‘도적’에는 아쉬움도 존재한다. 엔딩을 맞은 후에도 인물들 간의 숨겨진 이야기가 제대로 서술되지 않았다는 인상을 남기기 때문. 연결고리가 빠져 있으니 인물 간의 감정적 호응은 갑작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이윤과 철도국 과장으로 위장한 독립군 ‘희신(서현 분)’의 사랑이 그러하다.
다만 원래 20부작으로 기획됐던 작품인 만큼, 과거 이윤의 친구였지만 현재 일본군에 충성하는 ‘광일(이현욱 분)’·희신과의 자세한 과거, 도적단의 이야기는 다음 시즌에서 풀리게 될 것이라고 했다. 다음 시즌 제작 여부에 대해 김남길은 “준비는 하고 있다. 시즌 1에 대한 반응이 있어야 시즌 2를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라면서도 “시즌 2에 대해 작가와 초반에 이야기를 하고 제작에 들어갔다. 시즌 2는 여러 서사가 풀리고 새로운 악역이 등장하는 등 전투 장면이 많아 스케일이 커질 것이다. 시즌 2를 꼭 찍어야 한다고 했다”고 예고했다.
여자이지만 돈을 받고 살인 청부에 능숙하게 임하는 ‘언년이(이호정 분)’나 무기를 거래해 막대한 돈을 번 사업가 ‘김선복(차청화 분)’, 전라도·경상도·함경도 사투리를 쓰는 도적단 일원들의 개성 가득한 모습도 즐거움을 자아낸다. 9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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