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직속기구들이 고급 음식점에서 회의를 여는 관례가 윤석열 정부에서도 반복적으로 진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의힘은 야당 시절 문재인 정부의 이 같은 모습을 집중적으로 비판한 바 있다. 하지만 건전 재정을 내세우며 예산 ‘허리띠 졸라매기’를 강요하는 윤석열 정부에서도 이러한 행태가 되풀이되면서 ‘내로남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정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 직속위원회들이 정부 출범 이후(2022년 5월)부터 지난 7월까지 1년 3개월간 사용한 업무추진비를 전수 분석한 결과, 식비(일반음식점 기준)로 약 11억 3000만 원의 예산을 사용한 것으로 집계됐다.
국가인적자원위원회와 같이 사실상 기능이 정지됐거나 국가도서관위원회·국가물관리위원회 등 위원장 공석 또는 위원장 소유의 카드가 없는 곳들을 제외하면 1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대통령 직속위 한 곳당 1억 원가량을 식비로 지출한 셈이다. 이마저도 호텔에서 사용한 식비와 다과·기념품 등의 용도로 지출된 비용은 제외하고 순수 ‘일반음식점’에서 쓴 금액만 보수적으로 추계한 것이다.
직속위 중 식비에 가장 많은 예산을 사용한 곳은 김문수 위원장이 이끄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였다. 경사노위가 식비로 사용한 금액은 1억 8000만 원가량이다. 김 위원장이 지난해 9월 취임한 점을 감안하면 1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짜장면(7000원 기준) 2만 5000여 그릇에 해당하는 국민 혈세를 식비에 사용한 셈이다.
노사 간 중재 및 타협 등 사회적 대화를 진행하는 게 경사노위의 주요 업무다보니 식사를 겸한 회의 주재가 잦았다는 게 경사노위 측의 설명이다. 이를 반영하듯 삼계탕 전문점이나 이른바 ‘중국집’으로 불리는 일반 중식당 등 노동자들이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식당들을 주로 찾았다.
다만 노동 및 위원회 현안 관련 회의, 사회적 대화 활성화를 위한 논의 등은 서울 중구 모 호텔에 있는 중식당에서 10회 가량 진행했다. 이곳은 주로 코스요리 위주로 메뉴가 구성돼 있으며 가장 저렴한 식사인 삼선짜장면의 가격이 한 그릇에 1만 5000원이다. 경사노위가 일반 중국집을 포함한 중식당에서 식비를 결제한 횟수는 총 31회였다.
국민통합위원회(위원장 김한길)는 한정식을 선호했다. 국민통합위 사무실이 있는 정부서울청사와 가까운 경복궁 인근 D 한정식에서 24회, 한때 진보진영의 재야운동 장소로 쓰였던 덕수궁 근처 D 식당에서 20회 업무협의와 간담회를 진행했다. 지난해 7월 김 위원장 취임 이후 국민통합위가 식비를 결제한 횟수는 총 134회, 금액으로는 1억 1000만 원 수준이다.
이밖에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위원장 장태평)와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위원장 김상협)는 각각 1억 1800여만 원을 식비에 지출했다. 극우 성향 단체인 ‘뉴라이트’ 출신으로 이념 편향 인사 논란을 일으킨 바 있는 이배용 위원장이 이끄는 국가교육위원회도 한정식 식당과 고급 샤브샤브 음식점 등에서 식사비용으로 5000여만 원을 썼다.
이들의 예산을 편성하고 관리·감독을 해야 하는 경제 담당 부처들도 고급 음식점에서 업무추진비를 사용하는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었다. 식비 사용처 중에는 광화문 인근 고급 일식집과 세종시에 위치한 한우구이 전문점 등도 포함돼 있었다. 국민의힘은 야당 시절 문재인 정부 대통령 직속위의 업무추진비 사용을 집중 비판했지만, 물가 상승 등을 감안하더라도 윤석열 정부에서의 식비 지출 규모가 문재인 정부 시절보다 더 크다는 게 정태호 의원실 측의 분석이다.
정치권에선 매년마다 반복되는 업무추진비 호화 지출 지적을 막기 위해선 여야정이 함께 개선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실적으로 다수의 인원들이 식사를 겸한 회의를 진행하기 위해선 식당에서의 업무추진비 사용이 불가피한 만큼 결제 금액 등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는 등의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 의원은 “업무추진비 호화 지출 지적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여야가 공수만 바꿔왔다”면서 “이번 계기를 통해 업무추진비 집행의 적정성, 합리성 등 미흡한 부분이나 불합리한 점에 대해서 여야정이 함께 개선점을 찾는 기회를 만들었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