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 년 살고 싶어
봄이면 씨앗 뿌려 여름이면 꽃이 피네
가을이면 풍년 되어 겨울이면 행복하네”
남진의 노래 ‘임과 함께’의 이 구절은 많은 중장년이 그리는 은퇴 후의 삶일 것이다. 김희권(63·사진) 씨도 마찬가지. 직접 지은 집에서 텃밭을 가꾸며 사는 삶을 꿈꿨던 그는 1990년대 말 취미로 건축 목수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목조주택을 짓기 시작한 지 22년이 흘러 현재 주택 전문 건축회사 ‘더원하우징’의 대표를 맡고 있다. 전원생활의 꿈이 평범한 회사원을 목수로, 건축회사의 대표로 이끌었다. 라이프점프는 지난 29일 김 대표를 만나 그의 인생 2막 이야기를 들었다.
잘 되던 사업을 내쳤다, 목공 현장으로 갔다
1990년대 말, 그는 10년간의 회사 생활을 접고 베이커리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시작했다. 한강 이북 지역에서 매출 2위를 찍을 만큼 장사는 잘됐다. 하지만 그가 그리던 삶과는 점차 멀어져갔다. 가게 근처에 방을 얻어 홀로 살며 동틀 때 문 열고, 해질 때까지 매장을 지켰다. 가족과는 전화 속 목소리로 만나야 했다. 돈만 벌고 사는 삶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진짜 꿈은 은퇴 후 아내와 시골에서 텃밭을 가꾸며 사는 것. 목수 일을 배워 내 집을 직접 지을 기반을 닦아두면 어떨까. 그는 꿈에 가까이 다가서기 위해 매장을 접었다.
“구인 사이트에 들어가서 목수 채용 공고에 이력서를 냈죠. 생초보라고 적었는데도 다음 날 일하러 오라고 연락이 오더라고요.”
일은 고됐다. 일을 한 다음 날이면 손가락을 구부리기 힘들 만큼 부었다. 하지만 취미로 시작한 일이 그에게는 천직처럼 느껴졌다. 주어진 일을 해내기만 하면 하루가 다르게 집이 올라갔다. 몸은 무거워도 오늘은 어떤 공정을 하게 될지 현장에 나갈 때마다 설렜다.
낮에는 몸으로, 밤에는 머리로 건축을 깨우쳤다. 현장에서 선배들의 다양한 공법을 배웠고, 퇴근 후 숙소로 돌아오면 단잠에 드는 대신 IRC(International Residential Code·세계주거건축규정) 책자를 펼쳤다. 가족의 생활비를 위해 간간히 다시 자영업에도 뛰어들었지만 건축 현장으로 돌아오는 일이 10년간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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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곧 ‘스토리’…100% 직영 건축회사 설립
일감을 수주해주던 회사에서 어느 날 새로운 일을 맡겨왔다. 건축 박람회에서 예비 건축주를 만나는 일이었다. 그렇게 2010년쯤부터는 영업이나 외주 소장 업무를 담당하며 업계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볼 기회가 생겼다. 그러다 보니 문제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건축주가 집을 짓기로 마음먹었을 때부터 계약, 설계, 집을 지어가는 과정까지 하나하나가 연결돼야 하는데 자꾸 끊어지는 거죠. 영업사원들이 계약 성사 후 수당을 받고 퇴사하면 건축주는 대화할 창구가 없어져요. 새로 온 담당 직원은 전임자가 한 계약은 불성실하게 상대하고요.”
그가 생각하는 집은 ‘스토리’다. 평생 힘들게 일해 온 중장년이 꿈꾸던 집, 인생 2막을 꾸려갈 집에는 그들만의 스토리가 담겨야 한다. 그는 영업과 외주 소장 일을 그만두고, 100% 직영으로 건축주의 삶이 담긴 집을 짓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의뢰가 점차 많아지자 조직이 꾸려지고, 2018년 목조주택 전문 건축회사 ‘더원하우징’을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전원생활, 목적과 취미 있어야 정착”
은퇴 후 전원생활은 많은 중장년의 꿈이지만 모두가 정착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예비 건축주를 만나면 제일 먼저 어떤 땅에 지을지 묻는다. 부모님이 주신 땅인지, 살고 싶은 지역에 직접 산 땅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땅에서 전원생활을 하다 보면 권태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전원생활은 집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의도’가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전원생활한다고 산골짜기 들어가면 그게 바로 셀프 유배죠. 사모님들은 억지로 갔더라도 2년만 지나도 잘 정착하세요. 그런데 남자분들은 주변 사람들과 친해지는 걸 굉장히 어려워하세요. ‘목적과 취미’가 있어야 정착합니다.”
그는 1년에 30채 이상은 짓지 않는다. 그 이상의 의뢰가 들어오면 다음 해로 넘겨 버린다. 그의 메신저는 단체방으로 빼곡하다. 모든 공사 현장마다 김 대표와 인테리어·마케팅·시공 담당자, 건축주가 모인 소통방을 만들어 매일 시공 단계를 설명하고 의견을 공유한다. 건축주가 살고 싶은 집을 함께 만들어 간다는 자부심이 그의 얼굴에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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