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으로 양국 간 지상 전면전이 임박한 가운데 어느편도 들 수 없는 러시아의 속내가 미묘하다. 그동안 중동 지정학적으로 실리를 챙기며 산유국 등 중동 내 국가들과 우호 관계를 이어온 러시아는 이번 전쟁이 역내로 확산할 경우 한 쪽 입장을 선택해야 할 수도 있어서다.
10일(현지시간) CNBC 보도에 따르면 중동에서 성공적인 중립 외교를 펼치며 다소 독특한 위치에 있는 러시아의 고민이 깊어졌다. 최근 몇년 간 러시아는 이스라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다.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부터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서방 국가들의 반(反)러 제재와 우크라이나 지원 요청을 거부하며 중립적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이 사정만 보면 러시아가 이번 사태에서 이스라엘을 지지해야 맞다. 하지만 하마스의 배후가 사실상 이란이라는 점에서 러시아는 하마스를 비난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에게 이란의 존재감은 매우 크다. 이란은 부인하고 있지만 서방 국가들의 주장에 따르면 러시아는 이란으로부터 무인기와 대포, 전차 등의 무기를 수입해 우크라이나 침공에 사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 사회에서 고립된 러시아는 군사적 유대가 높은 이란의 심기를 살펴야 한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이어가기 위해 무기 등 군사 자원을 의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국제 동맹국 중 하나가 이란이기 때문이다.
카네기 러시아유라시아센터 선임연구원인 타티아나 스타노바야는 “이번 중동 갈등을 바라보는 러시아의 입장은 복잡하다”며 “러시아가 중동 내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중립 외교를 지킬 길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러시아 측은 이번 사태에 대해 적극적 행보를 보이지 않고 있다. 러시아 외무부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이 시작된 지난 주말 양측에 휴전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이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영토 사이의 평화협정을 중재한 서방을 향한 비난만 쏟아냈다. 크렘린궁은 “중동의 상황을 매우 우려하고 있다”면서도 “푸틴 대통령이 아직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 관리들과 안보 위기를 논의하기 위해 접촉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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