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소속이었던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의 무소속 대선 출마 선언이 미국 대선 레이스를 흔들고 있다. 정계의 관심은 케네디 주니어의 당선 가능성보다 과연 그가 민주당과 공화당 중 어느 쪽의 표를 잠식할 것인가에 모인다. 2000년 민주당의 표를 잠식해 조지 부시 대통령의 당선에 결과적으로 기여한 랠프 네이더와 같은 ‘제3후보 효과’가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0일(현지 시간) 미국 정치 전문 매체 더힐은 “케네디 주니어의 무소속 출마는 대선 결과에 대한 공화당과 민주당의 셈법을 바꿀 수 있다”고 평가했다. 주요 후보 지지율 여론조사 평균치를 추적하는 리얼클리어폴리틱스에 따르면 현재 케네디 주니어의 지지율은 14.5%다. 폴리티코는 “1992년 대선에서 득표율 19%를 기록한 로스 페로 후보 이후 케네디 주니어가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제3후보로 대선 승패를 가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케네디 주니어는 1963년 암살된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조카이자 1968년 피격으로 사망한 로버트 F 케네디 전 법무장관의 아들이다. 환경 변호사 출신으로 민주당 기반 정치인으로 활동하며 올 4월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도 도전했지만 전날 탈당했다.
양당제가 확고한 미국 정치 구조에서 무소속인 케네디 주니어가 대통령에 당선될 것으로 보는 이는 많지 않다. 그럼에도 그의 무소속 출마에 미국 정계의 눈이 쏠리는 것은 적어도 그의 행보가 대선 결과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대선의 승자 선정 구조는 더 많은 선거인단의 표를 얻는 쪽이 이긴다. 이때 승리한 주의 선거인단 표는 모두 승자의 득표로 계산한다. 결국 더 많은 주에서 승리해야 하기 때문에 몇몇 경합 지역(스윙스테이트)의 승리가 대선 결과를 가르게 된다. 펜실베이니아·조지아·애리조나·미시간 등이 대표적인 스윙스테이트다.
더욱이 경합 지역의 투표 결과는 적게는 수백 표 차이로 갈라지기도 한다. 제3후보가 전체 결과를 뒤바꿀 수 있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2000년 조지 부시 대통령과 앨 고어 당시 부통령의 대결에서 환경운동가 네이더 후보가 녹색당으로 출마해 고어의 표를 잠식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격전지였던 플로리다에서 재검표까지 가는 경합 끝에 부시 대통령이 불과 500여 표 차이로 민주당의 고어 후보를 눌렀다. 당시 네이더 후보의 플로리다 득표수는 9만 7000표였다. 결과적으로 고어의 표를 가져온 것이 부시 대통령 탄생의 일등 공신이 된 셈이다.
민주당은 네이더 사례가 재연될까 바짝 경계하는 분위기다. 이미 미국의 진보적 신학자이자 흑인 사회운동가인 코넬 웨스트 유니언 신학대 교수가 녹색당 소속으로 대선 출마 방침을 밝힌 상태라 표 분산 우려는 더욱 커졌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비공개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만나 제3후보의 위협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내용의 조언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케네디 주니어가 평소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등 보수주의자들의 성향에 맞는 행보를 보여왔다는 점에서 오히려 공화당의 표를 잠식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공화당 측은 전날 그의 무소속 출마 선언에 맞춰 ‘케네디 주니어를 반대하는 23가지 이유’라는 성명을 발표하며 경계했다.
케네디 주니어는 “두 정당에서 독립돼 있기 때문에 당파적 담론에서 벗어나 과감한 정책을 펼칠 수 있다”며 중간 지대를 공략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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