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전세자금대출을 포함한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이 6조 1000억 원 늘었다. 7조 원이 급증한 8월보다 다소 줄었지만 6월부터 이어진 가파른 증가세는 여전하다. 9월 말 기준 주담대 잔액은 연초 대비 35조 원 많은 833조 9000억 원에 달해 가계대출의 약 77%를 차지했다. 한국은행은 8월 주택 거래량이 크게 늘어난 데다 가을철 이사 수요까지 더해져 이달에도 주담대 급증세가 꺾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담대 금리가 7%를 넘어선 마당에 날로 커지는 부동산발(發) 빚 폭탄은 가뜩이나 성장 동력이 떨어진 우리 경제를 짓누르는 위협적인 뇌관이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된 데는 정부가 부동산 경착륙을 막기 위한 대출 규제를 완화하느라 집값 상승 기대에 불을 지펴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 수요를 다시 불러일으킨 영향이 크다. 부채 리스크가 커지자 정부가 뒤늦게 대출 규제를 조이기 시작했지만 오락가락 정책이 신뢰를 잃은 탓에 ‘빚내서 집을 사겠다’는 수요는 쉽게 꺾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정부 당국은 책임을 인정하기는커녕 은행 탓만 하고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11일 국정감사에서 “은행들이 50년 만기 주담대와 관련해 금융 당국과 사전 협의한 적이 없다”며 “금융인으로서 상식이 있으면 그런 상품을 내놓지 않을 것”이라고 은행권을 강하게 비판했다. 특례보금자리론과 함께 가계부채 급증 원인으로 지목되는 은행권의 50년 만기 주담대도 정부 공약에 맞춰 지난해 주택금융공사가 출시한 50년 만기 ‘보금자리론’을 따라 나온 상품이었다. 그런데도 금융권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금융 당국이 은행만 비난하는 것은 시장 혼란만 부추기는 실망스러운 모습이다.
정부는 책임 회피를 그만하고 이제라도 정책 신뢰 회복과 빚 폭탄의 뇌관 제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려면 주택 공급 확대 등 근본적인 시장 안정 대책을 전향적으로 검토해 부동산 시장에 명확한 정책 방향성을 제시함으로써 가계 빚 증가세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아울러 우리 경제를 짓누르는 빚 폭탄이 터지지 않도록 대출 규제 강화와 모니터링 등 빈틈없는 선제적 리스크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