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단색화의 거장 박서보 화백이 14일 별세했다. 향년 92세.
그는 지난 2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폐암 2기 판정 소식을 전했다. 당시 고인은 ‘작업에 전념하며 더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낼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후 작가는 최근까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해 왔으며 지난 9월 열린 프리즈 서울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1931년에 태어난 고인은 한국 추상미술과 단색화 분야의 대표 작가다. 1950년대 국내 추상 미술 운동을 이끌었고, 1960년대부터는 끊임없이 한 가지 색으로 선을 긋는 ‘묘법(Ecriture)’ 시리즈를 제작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그는 생전 “다섯 살 둘째 아들이 형의 국어 공책을 펼쳐 두고 글씨 연습을 하는 모습을 보고 묘법을 만들었다”며 “종이가 구겨지가 제 맘대로 쓸 수 없으니 짜증 내면서 죽죽 그러버리는 체념의 몸짓을 흉내 내 보고 싶었다”고 작품을 설명한 바 있다.
고인은 물감을 쌓고 뜯어내고 점을 찍는 등 작가의 신체를 이용해 작업을 반복하며 정신을 수양하고 탐구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제작했다. 특히 1967년 시작한 묘법 시리즈는 연필로 작업하는 전기(1967~1989)를 지나 한지를 풀어 물감에 갠 것을 화폭에 올린 후 도구를 이용해 긋거나 밀어내 작업하는 후기, 자연의 색을 작품에 끌어들인 유채색 작업을 변화해 왔다.
박 화백은 지난 2015년 이탈리아 베네치아 비엔날레 병행 전시로 열린 ‘단색화’전 이후 주목 받았고, 2018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연필로 선을 그은 연필 묘법 작품(1976년 작품)이 200만 달러(약 25억 원)에 판매되며 화제를 모았다. 미국 뉴욕현대미술관과 구겐하임미술관, 시카고 아트인스티튜트, 일본 도쿄도 현대미술관,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홍콩 M+미술관 등 세계 유명 미술관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고인의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조문은 이날 오후부터 받는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