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의 맹주이자 이슬람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스라엘과의 수교 논의를 잠정 중단했다. 2020년 아브라함협정(이스라엘과 바레인·아랍에미리트·모로코 등이 맺은 평화협정)을 계기로 확산한 중동의 평화 분위기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전쟁의 여파로 급격히 얼어붙는 모습이다.
AFP·블룸버그통신은 14일(현지 시간) 소식통을 인용해 사우디아라비아가 최근 미국 측에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 논의 중단 소식을 알렸다고 보도했다. 사우디아라비아 관리들에 따르면 이번 중단은 일시적 조치이며 수교 논의가 완전히 무산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존 커비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은 해당 보도에 대해 확인을 거부하면서도 “관계 정상화는 이들 국가가 스스로 내려야 할 결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던 태도에서 벗어나 최근 몇 달 동안 미국의 중재 하에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 협상을 하고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실세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석유 중심 경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경제구조 변화를 추진하고 있는데 이스라엘과 수교함으로써 외연 확장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계 정상화의 최대 걸림돌로 꼽히던 팔레스타인 문제에 결국 발목을 잡힌 셈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서 종교·분파가 같은 팔레스타인 편을 들 수밖에 없어 이번 사태로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는 평가가 많았다.
이런 가운데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중동 순방 나흘째인 15일 리야드에서 빈 살만 왕세자와 한 시간 이내의 회담을 가졌다. 회담에서 블링컨 장관은 하마스의 공격 중단과 확전 방지를 위한 미국의 의지를 강조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미국과 중동 국가들이 팔레스타인 문제를 도외시한 채 역내 긴장 완화를 추구하면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무력 충돌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판도 나온다고 CNN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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