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6일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열어 이달 말 종료될 예정인 유류세 인하 조치와 유가연동보조금의 한시 연장 등 임기응변식 민생 대책을 발표했다. 앞서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국제통화기금(IMF)이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2.4%에서 2.2%로 하향 조정한 데 대해 “우리보다 잘나가는 국가는 별로 없다”고 자부해 논란을 빚었다. 미국·일본 등 일부 선진국의 내년 성장률과 비교한 것이지만 저성장 장기화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국민들로서는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추 부총리는 수출보다 수입이 더 크게 줄어든 ‘불황형 흑자’에 의존한 무역수지 개선과 반도체 수요 회복 조짐을 앞세워 여전히 경기 낙관론을 펴고 있다. 경제팀이 말로만 ‘비상’을 내세웠을 뿐 현실과 동떨어진 안일한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잖아도 현장에서는 경제 부처 관료들이 정권과 여야 정치권의 눈치를 보며 몸을 사리는 복지부동에 빠져 있다는 지적이 많다. 최근의 민심 악화는 정부의 경제 살리기 성과가 뚜렷하지 않은 영향도 클 것이다. 우리 경제는 글로벌 긴축 장기화 속에 고금리·고물가·고환율 등 ‘3고(高)’의 먹구름에 휩싸여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의 충돌로 인한 경제 불확실성에 국제 유가가 폭등하는 ‘오일쇼크’ 경고도 나온다. 더욱이 외국인 투자가들은 우리 증시에서 3년여 만에 최장 기간인 16일 연속 팔자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기업의 실적 부진 등으로 투자 매력이 급격히 떨어진 우리 증시가 나 홀로 뒷걸음질 치는 현실부터 직시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중동 정세 불안 등으로 물가 상승의 우려가 커지는 만큼 민생 물가 안정에 모든 부처가 만전을 기해달라”고 주문했다. 당장 시급한 것은 물가 안정과 고용 창출 등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 지원책이다. 아울러 경제팀은 비상한 각오로 우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업을 옥죄는 규제 사슬 혁파와 전방위 세제·금융·예산 지원 등을 통해 바이오·원전·방산 등 신성장 동력에 대한 투자 속도를 높여 경제 회복의 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비상한 각오로 수출과 고용을 늘리고 지지부진한 성장률을 끌어올려 저성장의 늪에서 탈출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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