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현재 미국의 부채는 전체 경제규모의 100%에 도달할만큼 크게 불어났다. 그러나 연방정부는 물론 미국 경제 전체와 일반 소비자 그 누구도 누적된 부채로 타격을 입지 않았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부채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자금을 융통하는데 전혀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채권시장에서 싼 이자로 필요한 자금을 얼마든지 조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낮은 이자로 돈을 빌릴 수 있다는 것은 국내 기업과 소비자 역시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올 여름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정부의 장기국채 발행 경비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6개월 전 3.3%였던 연방재무부 발행 10년 만기 채권의 이자율이 이번주 초에는 4.8%로 뛰어올랐다. 16년만의 최고치 기록을 눈앞에 둔 장기 국채의 이자율은 전반적으로 예산 전문가들의 전망치를 웃돌고 있다.
이처럼 부채 경비가 급상승하면서 재정전망에도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장기채 금리가 빠르게 치솟은 이유는 분명치 않다. 장기적인 기대 인플레가 대단히 안정적이기 때문에 국채 이자율 상승과 인플레이션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없어 보인다. 경제전문가들은 인플레 이외의 서로 다른 요인들이 결합해 장기채 이자율을 밀어올린 것으로 추측한다. 여기에는 연방 예산적자, 재무부발행 장기채권 매도를 뜻하는 연준의 대차대조표 축소, 세계 3대 신푱평가사들 가운데 피치와 S&P의 미국채 신용등급 강등과 무디스의 합세 가능성, 엇박자를 내는 국내 정치와 불안한 국제정세 등이 포함된다.
정확한 원인이 무엇이건, 국채금리가 상승세를 유지할 경우 몇 년 내에 미국의 재정상황이 심각하게 꼬일 수 있다. 장기금리가 상승하면 정부의 부채 관리비용이 올라간다. 조만간 의회를 통과할 2024 회계 예산안도 엄청난 부채를 추가할 것이다. 정치인들이 정부가 거둬들이는 세수보다 더 많은 지출을 약속했기 때문에 적자 폭이 커지고 채무관리비용 역시 대폭 증가할 수밖에 없다. 갑작스런 경제성장으로 호황이 찾아오지 않는 한 고금리는 채무변제 비용을 확대해 우리가 원하는 다른 지출을 할 수 없게 만든다.
오랜 기간 정치인들은 재정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지출 프로그램을 없애고 어떤 세금을 인상해야 할지 고심할 필요가 없었다.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최소경비로 빚을 얻어 얼마든지 예산 구멍을 채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제로에 가까운 초저금리로 돈을 빌리기 힘들다. 이자 경비가 상승하고 경제성장이 뒤를 받쳐주지 못하면 우리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행할 ‘재정적 공간’을 잃게 된다. 그것이 설령 저소득가정 자녀 지원처럼 큰 이익을 보장하는 투자거나 경기침체·팬데믹·전쟁 등 예상치 못했던 충격에 대응하기 위한 경비라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경제성장률보다 대출 이자 상승률이 더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경우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중요한 프로그램에 대한 정부의 자금 지불능력이 심한 압박을 받게 된다
물론 분명한 해법은 존재한다. 정부는 이제부터라도 세수를 늘리고 지출을 줄이는 보다 책임있는 예산 결정을 내려야 한다. 혹은 근로연령대의 이민자들을 추가로 불러들여 고령화된 국가의 경제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이들이 분명한 해법이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해법이기도 하다.
요즘 연방의회 의원들은 정해진 시간에 경비를 지불하거나 정부운영에 필요한 정기적인 지출법안을 승인하는 등의 일상적인 재정 결정을 내리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이 적자축소에 필요한 예방책을 내놓을 것이라곤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더구나 이같은 정책은 각 당의 핵심 유권자들 사이에 인기가 없다.
손쉬운 자금조달로 자만심에 빠진 정치인들은 나태해졌고, 불어나는 예산적자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표심을 좇아 유권자들이 원하는 것들을 무작정 내주는데 익숙해졌다. 한때 예산적자 축소의 최대 걸림돌은 공화당과 민주당이 내세운, 이론적으로 양립불가능한 약속이었다. 기본적으로 공화당은 세금 인하를, 민주당은 지출 확대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오늘날 양당은 둘 모두를 약속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전체 가구의 97%에 적용되는 트럼프 세금인하를 연장했다. 공화당은 지출을 확대하는데 기꺼이 동의했고, 메디케어와 같은 사회복지프로그램에 손을 대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조만간 누군가는 공약을 저버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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