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19일 기준금리를 3.5%로 유지하며 6차례 연속 동결했다. 금리 인상도, 인하도 어려운 한은의 딜레마는 복합 위기에 빠진 우리 경제의 현실을 반영한다. 환율이나 가계 대출, 물가 등을 감안하면 금리를 올려야 하지만 수출과 내수 부진으로 경기 회복 여부가 불투명한 것이 동결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기준금리가 올 2월부터 동결되면서 우리 경제에는 여러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7월 말 이후 한국과 미국 간 기준금리 역전 폭이 역대 최대인 2.0%포인트로 벌어지면서 원·달러 환율은 11개월 만에 최고치로 상승했다. 환차손이 발생한 데다 미국 국채 금리가 16년 만의 최고 수준에 이르면서 외국인 증권 투자 자금은 8~9월 두 달 사이 31억 달러 이상 순유출됐다. 또 부동산 투자 수요가 늘면서 전체 은행권과 금융권의 가계 대출은 4월 이후 6개월 연속 증가세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3.7% 올랐다. 중동 사태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 물가가 더 치솟을 가능성이 크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금융통화위원 6명 중 5명이 추가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했다”고 전했다.
결국 한은이 금리를 동결한 것은 수출·수입, 투자, 민간 소비, 정부 소비 등 대다수 경제지표가 부진하기 때문이다. 가계·기업·정부 등 3대 경제주체가 모두 활력을 잃으면서 저성장이 고착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한은이 설립 목적과 정책 목표인 ‘물가 안정’보다는 경기 회복을 중심으로 통화정책을 펴야 할 처지로 내몰린 것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거시경제 여건의 불확실성이 계속되는 모습”이라며 “거시·민생경제 안정과 조속한 경기 반등을 위해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가 하반기로 갈수록 경기가 개선되는 ‘상저하고(上低下高)’ 전망만 반복한 채 안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는 이제라도 위기의식을 갖고 초격차 기술 개발과 신성장 동력 발굴 등을 위해 규제 혁파로 기업 투자를 유도해야 할 것이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노동·연금·교육 개혁, 서비스업 혁신 등 구조 개혁과 체질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 여야도 내년 총선 표 계산에만 골몰하지 말고 경제 살리기에는 당리당략을 넘어 초당적 협력에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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