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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승전 '의대 정원 확대', 해법 아니다" 산부인과의사들 작심 발언

산부인과개원의사회, 의료사고처리특례법 통과 촉구

분만수가 정상화 등 개선 없이 의대 증원 '낙수효과' 없을 것

(직선제)산부인과개원의사회는 22일 스위스그랜드호텔 서울에서 추계학술대회를 열고 기자간담회를 진행했다. 사진 제공=(직선제)산부인과개원의사회




속초 중앙산부인과는 강원도 속초시, 고성군, 양양군, 인제군을 통틀어 유일하게 분만이 가능한 병원이었다. 지난 2019년 속초시 출생아 415 중 312명이 이 병원에서 태어났다. 많을 땐 한달 분만건수가 50건이 넘었다. 그러나 이듬해 2월 말을 끝으로 분만실 운영을 중단했다. 출산 예정일을 두 달가량 남겨놓은 한 산모가 갑작스러운 진통을 호소하며 내원해 응급 분만이 이뤄졌고, 출혈 소견을 보여 인근 대학병원으로 전원됐는데 이튿날 사망하면서 유가족과 병원 간 논란이 일었다. 수억 원대 배상금이 걸린 민사소송이 진행되고, 이 같은 소식이 언론과 소셜미디어(SNS) 등을 통해 일파만파 확산하자 병원을 찾는 임산부가 줄면서 경영난까지 이어진 탓이다.

속초시는 부랴부랴 속초의료원에 산부인과를 개설했지만 분만 건수는 한달에 2~3건 남짓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언제 분만 상황이 벌어질지 몰라 대기해야 하는 분만전문의의 업무 특성상 의사 연봉을 4억 원대로 제시해도 지원자가 드물다. 어렵사리 채용이 되더라도 119구급차를 타고 한 시간씩 달려 응급 분만에 동원되는 상황을 겪고 나면 나가 떨어지기 일쑤다. 비단 속초의료원만의 사정은 아니다. (직선제)산부인과개원의사회에 따르면 전국 공공의료기관 중 7곳에서 전문의가 없어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못하고 있다. 산부인과가 없는 공공의료기관은 인천광역시의료원(종합병원, 백령병원 포함), 해군해양의료원 등 7곳에 달한다.

김재유 (직선제)산부인과개원의사회장은 22일 스위스그랜드호텔 서울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정원 확대를 통해 의사 총량이 늘어나면 적은 비중이나마 필수과 의사 역시 증가할 것이라는 ‘낙수 효과’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며 "기승전 '의대 정원 확대'라는 식의 접근으로는 분만 인프라 붕괴 등 무너져 가는 필수의료를 살릴 수 없다"고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의사 수가 아무리 늘어도 항시 소송 부담에 시달리고, 근무 환경마저 좋지 않은 산부인과를 선택하는 의사는 결코 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의사회에 따르면 분만 전문의들은 밤낮 병원에 묶여 있는 경우가 많은 데다, 안전을 위해 구비해야 할 인력, 시설 등이 상당하다. 현재 초산 산모의 제왕절개 분만비는 250만 원 남짓. 그에 비해 예기치 못한 사고가 벌어졌을 때 떠안아야 할 위험 부담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지난 2020년 3월 산부인과 전문의가 운영하는 병원에서 신생아가 출산했으나 약 20분 만에 숨지는 사건이 벌어지자 법원은 응급제왕절개수술 지연의 책임을 물어 병원 측에 약 4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올해 5월에는 뇌성마비로 태어난 신생아에 대해 분만을 담당한 산부인과 의사가 12억여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김 회장은 “산부인과 의사는 출산과 임신을 도와주는 것이지 모든 책임을 지고 아이를 낳게 할 수는 없다”며 "최선의 의료 행위를 하는 데도 불구하고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타날 경우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지속된다면 필수의료는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토로했다. 실제 젊은 의사들이 산부인과 지원을 꺼리는 이유는 이 같은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의사회에 따르면 2020년 12월부터 2021년 1월까지 산부인과 4년 차 전공의 82명과 전임의 2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47%가 ‘전문의 취득 및 전임의 수련 이후 분만을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의료과실에 의한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로 기소되는 사례는 나날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날 발표에 따르면 지난 2010년부터 2020년까지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로 1심 형사재판을 받은 의료인은 354명이었다. 그 중 67.5%가 유죄 판결을 받았다. 연일 내리막을 달리고 있는 출산율과 달리, 고위험 임신 비중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덩달아 의료 분쟁은 증가하는데, 보상이 적다 보니 민간병원들은 줄폐업하는 실정이다. 분만사고 소송에서 1심 결과가 나오는 데까지 평균 4년 정도가 걸린다. 최종심 판결이 내려질 때까지 7~10년이 걸리기도 한다. 재판 결과를 차치하고서라도, 이 기간 정신적 고통이 결코 적지 않다.

의사회는 분만을 비롯해 필수의료 분야 의료인력을 유입하려면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이 아닌, 별도 해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터무니 없이 낮은 수가를 정상화하고, 의료분쟁 위험을 해소하는 게 급선무라는 것이다. 오상윤 (직선제)산부인과개원의사회 총무이사는 "인구가 적은 지역에서 분만실을 운영하더라도 최소한 24시간 운영 가능한 수준으로 비용을 지원해 줘야 한다"며 "정당한 수가가 반영되지 않으면 결국 분만인프라는 붕괴될 것"이라고 말했다. 명백히 의료진의 과실이 아닌 분만사고에 대해서는 정부가 보상하는 대책도 필요하다. 현행 의료분쟁조정법은 무과실 분만사고에 대해서 정부가 산모에게 보상을 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지원금은 최대 3000만 원에 불과하다. 사고 이후부터 들어가는 비용은 물론, 분만사고 소송의 손해배상 금액이 10억 원대를 넘어가고 있는 상황을 감안할 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오 이사는 "현행 보상금의 상한을 현실에 맞게 10억 원 수준으로 대폭 상향해야 한다"며 "선의의 목적으로 이뤄지는 의료행위에 형사적 책임을 면하도록 하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경진 기자 realglasse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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