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고금리가 장기화하면서 ‘마이너스 금리’로 대표 되는 완화정책을 추진해온 일본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미국과의 금리 차 확대로 엔저(엔화 가치 하락)가 심화하는 가운데 통화정책의 기조를 금리 인상 등 ‘긴축’으로 전환할 경우 국채 매입으로 금리를 억제해온 일본 정부의 이자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엔화가 강세를 보이면 금리가 낮은 국가(일본)에서 돈을 빌려 고금리 국가의 자산에 투자하는 일명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이탈해 글로벌 금융시장이 크게 출렁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5일 외환시장에 따르면 엔·달러 환율은 최근 149엔 후반에서 움직이고 있다. 이달에는 장중 ‘심리적 저항선’인 150엔을 돌파한 날도 4일이나 됐다. 일본은행(BOJ)이 지난달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당분간 금융 완화정책을 고수하겠다고 밝혔지만 인플레이션이 17개월 연속 목표치를 웃도는 등 내년 상반기 중 마이너스 금리 해제가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 잇따르고 있다.
일본 정부의 재정 악화 우려는 BOJ가 정책 변경을 고심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다. BOJ는 장기국채금리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국채를 무제한 매입하는 정책(YCC·수익률곡선제어)을 펼쳐왔다. 올 6월 발표된 일본 자금순환 통계에 따르면 BOJ가 보유한 국채는 3월 말 기준 576조 엔으로 전체 국채 발행 잔액의 50%에 달한다. 중앙은행이 긴축으로 방향을 선회해 마이너스 금리를 철폐하면 정부가 내야 할 국채 이자 부담은 급격히 불어나게 된다. 일본 재무성은 기준금리를 1% 올리면 정부의 국채 원리금 상환 부담 비용은 2026년 3조 6000억 엔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상환 비용이 커질수록 정부 재원은 줄어들게 된다.
YCC 정책 수정 역시 세계시장에 미칠 파급력을 고려할 때 부담스러운 카드다. BOJ는 올 7월 국채금리 상한선을 0.5%로 유지하되 시장 환경에 따라 1%까지 용인하는 내용의 유연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최근 일본 국채 수익률이 미국 금리 상승 압력의 여파로 1%에 육박하며 YCC 재수정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YCC의 추가 완화 또는 폐지 관측이 제기된다. 다만 YCC를 손봐 일본의 금리가 올라가면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가속화해 일본을 넘어 세계 금융시장에도 영향이 미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엔 캐리 트레이드 규모를 가늠하는 일본 내 외국은행의 엔화 대출 잔액은 4월 말 기준 12조 9000억 엔으로 2021년 말 대비 48% 증가했다. 현재 일본 자금의 미국 국채 보유량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해외 주식·채권에 투자된 자금이 이탈할 경우 미국은 물론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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