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 임원이 국회 국민동의청원을 통해 '제2의 의사면허증'과 '사관학교형 의대 설립'을 제안하면서 의료계 내 파장이 커지고 있다. 강경파 의사들이 거세게 반발하자 의협은 해당 임원을 면직시키면서 손절 움직임을 보였다.
26일 의료계 등에 따르면 지난 23일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의사 증원과 필수의료 구조조정을 위한 제2의 필수용 의사면허증 신설, 교육, 운영에 관한 법률 제정, 일명 사관학교형 의대에 관한 청원'이 공개되면서 의료계 공분을 사고 있다.
청원인 윤 모씨는 게시글을 통해 "의사 증원의 실질적인 효과와 미래 의료제도의 구조조정을 위해 제2의 의사면허증 신설 및 사관학교형 의대 설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현재 지역 및 필수의료 붕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방법으로 제시되고 있는 공공의대 설립 및 의사 증원으로는 한국 의료계가 처한 위기를 극복하기 어려우며, 의료 선진화를 위한 구조 조정이 함께 진행돼야 한다는 게 청원인의 논리다. 그가 제안한 해법은 국비로 운영하는 사관학교형 의대를 신설하고, 졸업자들에게 공무원 신분을 부여해 필수의료 분야에서만 종사하도록 제한하자는 것이다. 제2의 면허증이란 쉽게 말해 공무원 신분의 의사를 의미한다. 해당 면허증 소지자는 공무원 신분이기 때문에 정부가 원하는 의료기관이나 정부기관 등에서만 의사 활동이 가능하며, 공무원 신분에서 벗어나면 의사로서 활동은 금지시켜야 한다는 제안도 담겼다. 우선 사관학교형 의대 정원으로 당초 거론됐던 3000명 중 1200명을 배분하고, 향후 필수의료 분야로 한정해 차츰 늘려가자는 것이다. △공무원 의사 간 상생 경쟁 유도 △부모 능력 무관한 의대 입학 기회 부여 △현재 설립된 의대 활용 △공무원 기준 최소·최장 근무기간 적용 △사직·은퇴 후 진료활동 불가 등에 대한 아이디어도 내놨다.
그는 이 같은 제안의 배경에 대해 "현행 체계에서는 의대 정원을 아무리 늘리더라도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하므로 필수의료 붕괴를 온전히 막을 수는 없다"며 "현재 정부가 의대정원 확대와 함께 정책패키지로 고려 중인 처우개선, 수가 인상 등도 의료비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장기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국민동의청원 시스템의 특성상 청원인의 신원은 공개되지 않는다. 다만 '사관학교형 의대'는 성형외과 전문의로서 의협 기획이사로 활동해 온 윤인모 유니메디 성형외과 원장이 본인의 저서를 통해 주장해 온 내용이다. 청원인의 실명이 윤 모씨라는 사실까지 더해지면서 의료계 내부에서는 윤 원장이 국민동의청원을 작성했음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주수호 전 의협 회장이 대표로 있는 미래의료포럼은 이날 성명을 내고 "의대 정원 확대 반대가 의협 대의원회 결의이자 집행부에 전달한 수임사항인데 집행부 일원인 기획이사가 그에 반한 언행을 서슴지 않고 있다"며 "윤 이사를 즉각 해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료계 내부에서 술렁임이 커지자 의협은 이날 오후 입장을 통해 "윤인모 기획이사의 의견은 협회 공식 의견이 아니다. 26일자로 의원면직 처리됐다"고 밝혔다. 윤 이사는 유니메디 성형외과를 운영하고 있고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외래교수로 활동 중이다.
의협 집행부는 최근 보건복지부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위기를 맞았다. 정부와 의대 정원 확대 관련 논의를 앞두고 있는 민감한 상황에서 회원들의 신임을 잃은 의협 집행부가 빠르게 손절 움직임을 보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의료계 강경파로 꼽히는 박명하 서울시의사회장과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전일(25일) 의협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 정부가 졸속 강행하는 의대 정원 확대는 대한민국 의료의 근간을 위태롭게 할 포퓰리즘임을 분명히 하고 이를 절대 거부한다"고 밝혔다. 임 회장은 최근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 등에 반발하며 의협과 별도의 투쟁조직인 미래를생각하는의사모임을 출범시킨 바 있다.
해당 국민동의청원은 공개 후 사흘차인 현재 170여 명의 동의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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