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표 상권으로 급부상한 성수동에 추가로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지정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성수동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기존 상인과 원주민들이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기 위한 조치다. 관할 자치구인 성동구가 지정 필요성을 주장하지만 서울시의 협조가 필요해 실제 지정이 될지는 미지수다.
27일 성동구에 따르면 구는 이달 19일 서울시에 기존 아파트나 뚝섬주변지역 지구단위계획구역 내 개발 중인 아파트를 제외한 성수동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해달라고 요청했다.
부동산 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상 국토교통부 장관이나 시도지사는 투기 거래가 성행하거나 지가(地價)가 급격히 상승하는 지역, 투기 우려가 있는 지역을 5년 이내 범위에서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다. 지정 시 주택·상가·토지 등을 거래할 때 관할 시장·군수·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매수 후 실거주 의무가 따라붙는다. 지정 권한은 없지만 구청장 등 관계 행정기관장도 국토부 장관이나 시도지사에게 지정을 요청할 수 있다.
현재 성수동에서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된 곳은 한강 변에 있는 성수전략정비 1~4구역뿐이다. 서울시는 2021년 4월 투기를 차단하기 위해 이 일대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한 뒤 올 4월 재지정했다. 성동구는 전략정비구역 주변, 재개발지역을 제외한 미개발지 등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추가 지정해달라는 입장이다. 부동산 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이달 19일 개정되면서 대상자와 용도에 따라 토지거래허가구역 ‘핀셋 지정’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지정이 용이해졌다는 주장이다.
자치구에서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주민들이 본인 소유 아파트나 토지 가격 상승을 기대하기 때문에 구청장들이 서울시에 지정 해제를 요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실제로 강남구는 올 5월 대치·삼성·청담동 일대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기간 만료일이 도래하자 서울시에 규제 해제 의견을 제출했다.
성동구가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을 요청한 것은 성수동 부동산 가격이 3년 만에 3~4배 급등하면서 상권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투자 유망 지역으로 ‘마포·용산·성동(마용성)’이 꼽히면서 성동구 아파트 가격이 급등했고 성수동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핫플레이스’로 인기를 끌자 연무장길·카페거리 등 주요 상권의 상가 임대료도 급격히 뛰었다. 구가 2015년 전국 최초로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약을 제정하고 프랜차이즈·대기업 입점을 막았지만 젠트리피케이션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최근 화장품 제조사인 아모레퍼시픽이 연무장길(성수동 2가 골목길) 빌딩을 평당 2억 5000만 원에 매입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전날 기자 설명회에서 “평당 1억 원 하던 곳이 2억 5000만 원까지 뛰었는데 이는 투기라고 생각한다”며 “기업들의 상가 통매입이 무섭게 이뤄지고 있어 앞으로 젠트리피케이션 문제가 더 심각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려면 이해관계자들의 반발을 넘어야 하고 서울시의 협조도 얻어야 한다. 정 구청장은 “재산권을 제한하는 것보다 임대료 상승에 의한 문제가 더 크다”면서 주민 설득 과정을 거치겠다고 설명했다. 시 관계자는 “요청이 들어오면 검토를 거쳐 도시개발위원회에 안건으로 상정해 위원들이 결정한다”며 “현재 검토 단계”라고 말했다.
정 구청장은 임차인 보호 입법을 위해 국회와 정부에 환산보증금 기준 폐지를 요청할 계획이다. 현재 서울의 경우 상가임대차보호법상 환산보증금(월세에 100을 곱한 금액과 임차보증금 합산)이 9억 원 이하인 경우에만 보증금을 보호받을 수 있는데 최근 임대료가 급등해 기준을 넘는 사례가 많다는 이유에서다. 자신이 회장을 맡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지방정부협의회’를 중심으로 지방자치단체들과 세부적인 개선 방안을 마련해 이르면 다음 달 초 환산보증금 기준 폐지 공론화에 나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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