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대상 연구개발(R&D) 예산의 삭감에 대한 논란이 크다. 공대 출신이다 보니 주변에 기술벤처기업을 하는 지인들이 많다. 몇몇 분들은 정부 R&D 지원금 받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매번 선정되는 것도 놀랍지만 그렇게 정부 R&D 지원금으로 개발된 기술이 매출을 거의 내지 못한다. 그래도 해당 연구 과제가 끝나면 어김없이 다음 연구 과제에 선정된다.
R&D 연구 과제 선정을 위한 심사 과정은 매우 공정하다. 지나치게 공정성을 추구하다 보니 전문성이 있는 심사위원을 구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해당 분야 전문가는 이해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촘촘한 기준을 통과하기 어렵다. 필자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했을 때 사업에 대한 경험이나 전문성이 없는 심사위원이 호통을 치거나 엉뚱한 지도를 하는 모습을 보면 심사위원을 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그러다 보면 전문성 있는 심사위원의 참여는 더 줄어들게 된다.
부처 간 중복 사업도 문제다. 정부 부처 간에 서로 모방해서 만든 사업이 너무 많다. 복사한 사업의 숫자는 늘어나고 단위 사업 규모가 작아진다. 과제당 몇억 원씩 나눠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혁신성이 있고 경쟁력 있는 기술을 목표로 하는 기업에 지원을 몰아줘야 세계 시장에서 통할 기술과 제품이 개발될 텐데 이렇게 조금씩 나눠주다 보니 실제 효과는 없이 예산만 낭비된다. 지원금을 받는 데 특화된 회사만 연구비를 받아가고 오히려 자력으로 개발하는 회사는 지원금을 받은 회사와 경쟁해야 하는 역차별을 받는다. 좀비기업이 건강한 기업의 발목을 잡는 꼴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R&D 지원 정책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일단 지금과 같이 예산의 삭감이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이참에 효과가 떨어지는 사업은 과감히 폐지해 사업의 수를 줄여야 한다. 부처 간 중복되는 사업도 폐지해야 한다. 사업의 수를 줄이고 단위 사업의 규모는 대폭 키워야 한다. 사업당 지원 프로젝트 수도 줄여야 한다. 이렇게 하면 하나의 과제에 최소 수십억 원 이상 지원할 수 있고 심사 대상이 줄어들어 전문성 있는 심사위원 확보가 용이해 제대로 된 심사가 가능하다.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소수에 집중 지원할 수 있다.
정부 보조금·지원금이 많은 산업이 경쟁력이 더 떨어진다는 것은 굳이 연구 사례를 들지 않아도 공감하는 사실이다. 나눠먹기 방식으로 낭비되던 지원 예산은 축소하거나 폐지하고 절감된 예산은 벤처 투자 예산으로 전환해 시장에서 검증된 회사로 돈이 흘러가게 해야 한다. 심지어 가장 성공적이라고 평가받는 팁스(TIPS) 프로그램의 R&D 예산도 투자 재원으로 쓰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이번 R&D 예산 삭감을 계기로 우리나라 R&D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다 같이 지혜를 모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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